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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영희 막달레나

2017.05.21 11:08

기도방지기 조회 수:207

 

딸이 무사히 있는 것을 보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제부터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에 더 반대하지 않겠다』

고 하며 신앙생활을 허락하였다.

 

 

성령님 영혼의 행복한 빛이여 !

저희를 가르치시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게하시고

착한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주님 !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믿음약한 저희가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를  본받게 하소서 !

성녀 이영희막달레나시여 ! 믿음약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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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 약전] 이영희

 

기해년 7월 20일에 순교한 여교우들 중에는 동정녀들이 3명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이영희 막달레나였다. 동정을 지키기 위하여 그녀가 행한 노력은 성교의 도리를 알고 이를 실천하려던 본보기로 많은 의미를 느끼게 한다.

이 막달레나는 1809년(순조9년) 시흥군(始興군) 봉천리(奉天里)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허 막달레나와 언니 이 바르바라, 그리고 고모 이 데레사는 모두 열심한 신자였으나, 아버지가 완고한 외교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몰래 기도와 수계를 할 수밖에 없었고 집안의 귀찮은 일을 수없이 당해야만 하였다.

막달레나가 장성하자 아버지는 그녀를 어떤 외교인과 결혼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본래부터 동정을 지킬 마음이 간절하였던 그녀는 아버지의 강요를 피하기 위하여 집을 빠져 나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집에는 젊은 여 교우가 하녀로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막달레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힌 다음『여기에서 서울까지는 30리라더라. 나는 길을 모르지만 아버지께서 내일 서울에 가실 터이니 네가 그 뒤를 따라가서 자취를 남기도록 하여라. 그러면 나는 또 네 뒤를 따라가겠다』고 하며 서로 이 계획을 약속하였다.

밤사이에 떠날 준비를 갖춘 다음 막달레나는 집 주변의 숲 속에 들어가 몸에 상처를 내어 옷에 피 칠을 하고 찢어서 여기저기 흩어 놓았다.

다음날 새벽에 아버지가 서울을 향하여 떠나자 막달레나는 계획대로 하녀의 뒤를 따라 서울에 이르러 고모인 이 데레사의 집으로 갈수 있었다.

조카딸이 남루한 옷을 입은 것을 보고 그녀의 고모는 크나큰 불행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여 몹시 놀랐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열심한 신자였기 때문에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는 곧 이를 이해하였으며 자기와 함께 살며 신앙생활을 지켜나가자고 말하였다.

그 동안에 본집에서는 막달레나가 보이지 아니하므로 가족들이 그녀의 행방을 근심하며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집안과 주변을 살펴보아도 종적은 묘연하였다.

마침 삼촌이 이 소식을 듣고 숲 속을 찾아보다가 조카딸의 피 묻은 옷이 흩어져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족들은 막달레나가 범에게 잡혀 먹혔다고 단정한 후 딸을 잃은 슬픔에 젖어서 지내게 되었다. 막달레나는 부모와 가족들에게 근심을 주는 것이 못내 가슴 아팠지만, 천주의 가르침을 본받는다는 마음으로 이를 이겨 나갔다.

그렇게 지내기 석달 후 어머니는 딸이 동정을 지키기 위하여 서울 고모의 집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는 정도 안심하게 되었다. 이어 아버지도 눈치를 채고 아내로부터 딸의 뜻을 꺾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는 곧 서울로 달려가 딸이 무사히 있는 것을 보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제부터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뜻에 더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며 신앙생활을 허락하였다.

이렇게 하여 막달레나는 완고한 외교인이었던 아버지에게서도 신앙을 허락 받아 열심히 수계하며 본래부터 원하였던 동정을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언니인 이 바르바라도 당시 남편을 여의고 고모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자매가 만나 천주를 봉행 할 수 있었다. 후에는 막달레나의 어머니와 다른 여 교우들도 이곳으로 와서 함께 천주의 교리를 지켰으며 박해를 만나는 경우에도 항구(恒求)하자고 서로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기해년 4월에 이르러 이곳에서 생활하던 여 교우들은 다른 교우들이 체포되어 순교하는 사실을 보았으며 이에 간절한 열망으로 신앙을 증거하고자 포청에 자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막달레나는 동정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한 만큼 어떠한 형벌에도 굽히지 아니하였다. 포청에 압송된 후 그녀는 여러 교우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주님을 위한 항구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이를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고모 등도 모두 한가지로 배교를 거부하였다. 결국 막달레나의 가족들은 포청에서 형조로 옮겨져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그들은 여러 주일 동안 옥중의 간고(艱苦)를 겪어야만 하였다.

이렇게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고초를 이겨내던 막달레나의 가족들은 마침내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하였으니 이때 막달레나는 31세였다. 그러나 당시 법으로 부모나 형제를 같은 날에 죽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달레나의 어머니와 언니는 순교의 날을 좀 더 기다려야 하였다.

[가톨릭신문, 1984년 2월 19일, 김옥희 수녀(한국순교복자회·
수원대 교수)]

 

 

 

103위 순교성인

 

  1) 순교로 빛을 밝힌 백삼위 성인 오롯이 바친 넋에 새순이 돋아

순례의 교회 안에 큰 나무되니 님 따른 그 생애가 거룩하여라

영원히 받으소서 희망의 찬미찬송을 이름 모를 순교자여 새 빛 되소서

   2) 이 땅에 빛을 주신 주 하느님
태초의 혼돈에서 창조 이루듯

한 민족 새 얼 속에 나게 하시니 구원의 기쁜 소식 누리 비추네

이백년 이어받은 신앙의 유산 기리며 온 세상에 드높이리 성삼의 영광

   3) 생명의 빛을 받아 새로 난 겨레
일치의 성령 안에 함께 모여서 한민족

새 얼 속에 나게 하시니 구원의 기쁜 소식 누리 비추네

만백성 찬양하라 사랑의 승리 기쁨을 이 땅 위에 빛나시는 하느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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