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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바르바라

2017.03.12 09:35

기도방지기 조회 수:269

 

우리 교우들은 어떻게나 빽빽이 갇혀 있었던지

잘 때에 자리도 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한 것은

이 참혹한 옥중의 괴로움에 비하면

고문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처로 인해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의 자리는 곧 썩어버려

견딜 수 없는 악취를 풍기며 열병이 발생해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갔다.

 

 

 

 

성령님 ! 수많은 선물을 주시는 분 !

저희를 가르치시어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삼가게 하소서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녀 이 바르바라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

성녀 이 바르바라시여  믿음 약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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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 바르바라는 원래 부모형제가 교우인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 청파동에서 살았으나 조실부모하자, 가난하고 의탁할 데가 없어 서울의 두 이모 이정희와 이영희 밑에서 자라났으니, 이는 오직 천주를 사랑하다가 며칠 동안에 천국에 오르기 위해 태어났던 간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바르바라는 천성이 온순하고 아주 다정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부지런해 가난을 참는 덕이 비범했다고 한다.

기해년 박해 때 4월 11일 두 이모와 친척과 함께 포장에게 자헌하며 용감히 어린 나이로 혹형을 감수했다. 교황청 조서에는 포도청에서 무수한 형벌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어 포청에서 신문을 받은 후 형조로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하여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자 다시 포청으로 송환되었다.

형조로 옮겨가서는 재판관이 엄포하고 때로는 달래며 배교시키려 했으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으며 용렬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조를 굽히는 표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재판관은 동정하여 형조에게 처단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명목으로 포도청으로 돌려보냈다. 이 바르바라와 같은 감방에서 그와 동갑인 세 소년이 갇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면서 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이 바르바라는 불행히 열병에 걸렸다. 이것은 당시 옥에 갇혀 있던 교우들의 고통을 더 심하게 했는데, 좁은 감방에 너무 많은 사람을 가두고 또 너무 불결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유사 열병이었다. 순교자 다블뤼 주교도 기해박해 당시의 감옥에서 열병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교우들은 어떻게나 빽빽이 갇혀 있었던지 잘 때에 자리도 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한 것은 이 참혹한 옥중의 괴로움에 비하면 고문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처로 인해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의 자리는 곧 썩어버려 견딜 수 없는 악취를 풍기며 열병이 발생해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갔다.”

포청에서 이 바르바라는 전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꿋꿋이 참고 인내하며, 앞서 말했듯이 오히려 함께 갇혀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1839년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그리고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함으로써 15세의 어린 나이로 순교했다.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작은공동체,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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