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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매임 데레사

2017.04.16 09:20

기도방지기 조회 수:239

 

차라리 죽을지언정 배교는 못합니다.

포청으로 넘어간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너희가 당한 형벌과 옥중 무서움이 너희의 혼미함을 아직도 깨치지 못했느냐?


우리보고 배교하라 함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자수한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인데 그분을 배반하라 하신단 말씀입니까?

당치 않습니다. 참된 교우는 천주를 위해 살고 천주를 위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나라 법이 저희를 사형에 처한다면 즐겁게 죽겠습니다

 

성령님 영원한 선이여 ! 

저희로 하영금 선에 항구하게 하소서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애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  주님을 증거하려고 스스로 포청을 찾았던

성녀 이매임 데레사의 믿음을

믿음 약한 저희가 본받게 하소서 !

 

성녀  이매임 데레사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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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매임 데레사는 과천의 봉천 이씨 집에서 제일 먼저 입교한 사람인 허계임의 시누이이며 이영희 고모이다. 외인 시절에 결혼한 이매임은 스무 살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같은 마을의 한 여교우가 그를 불쌍히 여겨 전교했다.

이매임은 자신만이 입교했을 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들에게도 열심히 전교했다. 그리하여 이영희(막달레나)의 어머니가 우서 입교했고 또한 어머니는 딸들을 입교시키게 되었다. 이매임은 판공 때가 되면 올케 허계임과 함께 상경해 성사를 보고 나서는 조카딸(이영희) 집에서 묵어가곤 했다.

여느 때처럼 기해년 봄에 매임은 올케 허계임과 함께 서울에 와 성사를 보고 잠시 조카딸 집에 들렀을 때 군란이 크게 일어났다. 이때 조카딸 집에는 딴 여교우 1명과 일가 5명이 모여 있었다. 많은 교우들이 잡혀가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했다. 특히 남명혁 다미아노와 이광헌 아오스딩 두 회장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 가운데 보여준 불굴의 신앙은 이 당당한 6명의 여인들로 하여금 천주를 위해 그들의 생명을 바치려는 열망에 이르게 했다.

그들은 즉석에서 자원(自願)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아직도 포졸들이 남아 파수를 보고 있는 남명혁 회장집으로 달려가 자수했다. 이때가 1839년 4월 11일이었으며 이 바르바라는 나이가 어려 자원의 무리에서 제외된 것 같으나 어쨌든 그도 붙잡혔을 것이 확실하다.

포졸은 어리둥절해 믿으려하지 않고 도리어 증거물 제시를 요구했다. 묵주를 꺼내보이자 그들을 결박하여 먼저 포장의 집으로 끌고 갔다. 포장은 천주교를 버릴 것을 강요 했다.

“너희는 천주교 도리가 옳다 믿느냐?”

“물론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아니 할 것이오.”

“배교하고 천주교 책을 버려라”

“차라리 죽을지언정 배교는 못합니다.”

포청으로 넘어간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너희가 당한 형벌과 옥중 무서움이 너희의 혼미함을 아직도 깨치지 못했느냐?”

그러자 “우리보고 배교하라 함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자수한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인데 그분을 배반하라 하신단 말씀입니까? 당치 않습니다. 참된 교우는 천주를 위해 살고 천주를 위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나라 법이 저희를 사형에 처한다면 즐겁게 죽겠습니다.”란 말을 남긴 그녀는 형조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하니 그녀의 나이 52세였다.

묵상 : 우리 순교자들 중에는 가족 순교자가 많다. 가장 많은 성인 가족이 바로 성녀 이매임을 비롯 허계임과 그 딸 둘, 시누이와 외손녀이다. 우리는 이분들의 신앙을 보고 가정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가정성화는 하느님의 바람이며, 신앙생활에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다. 성인 가족에게 기도요청을 잊지 말자. 우리 가족에게도 순교정신이 깊이 스며들도록 기도하고 한 가족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도록…….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작은공동체,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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