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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박희순 루치아

2017.01.16 11:12

기도방지기 조회 수:424

“청이 하나 있는데

내 목을 벨 때

냉정을 잃지 않도록

칼날을 잘 세워 두었다가

결코 헛된 칼질 말고

단번에 내 목을 잘라주기 바라네. 아멘.”

 

성령님 모든 은총을 베푸시는분 !

저희를 가르치시어 겸손하고 소박하게 살게 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믿음약한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믿음약한 저희가 성녀박희순 루치아를 본받게 하소서 !

성녀 박희순 루치아시여 믿음약한 저희 위해 빌어주소서 !

 


9.11.jpg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박희순 루치아는 어려서부터 순진 명랑하고 상냥한 성격에다 재주와 미모가 출중했으므로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미 어린 나이에 궁녀로 뽑혀 대궐에서 자랐는데 거기서도 윗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 희순이 15세가 채 안 되었을 때 당시 16-17세 된 어린 순조 임금이 그녀의 매력에 끌려 유혹하려 별별 수단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처녀는 끝까지 자신의 순결을 지켰다.

외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앵베르 주교가 조선에서는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고 할 만큼 굳건한 용기로 이와 같은 놀라운 덕이 있었으니 입교의 은혜는 어느 정도 상으로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는 서른 살 때 처음으로 천주교 이야기를 듣고 믿을 마음이 간절했으나, 궁중에 매인 몸일 뿐 아니라 김 대비의 깊은 총애를 받으며 다른 궁녀들을 감독하는 상궁의 자리에 있었고 선왕의 위패를 지키는 소임이 있던 만큼 빠져나오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천주교를 실천하려면 대궐의 온갖 미신 행위를 피해야 했기에 이 모든 장애는 그의 소원을 더욱 간절하게 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희순은 용감하게 결심하고 병을 핑계로 본가로 나가라는 허락을 받았으나 어머니는 별세했고 아버지가 외인으로 천주교를 적극 반대했기에 집으로 가지 못하고 남대문 밖 조카집에 가서 함께 살면서 조카와 온 집안을 권면해 모두 입교시켰다. 이때 그의 언니 박큰아기 마리아도 같이 살았으며 함께 수계했다.

궁궐을 나온 후부터는 지난날 영화와 쾌락 속에서 하는 일없이 많은 세월을 허송한 것을 생각하고 열심을 배가하여 모든 본분을 어김없이 지켰고 특별히 옷과 음식에 있어서 많은 극기를 했고 애긍에 힘썼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상본 앞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오상을 묵상하며 눈물 흘렸다.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다 천주님과 결합되어 있다고 여기면서 열성과 고신극기의 표양이 교우들을 감동케 했다.

박해가 일어 그의 집이 고발되자 조카는 집을 팔았다. 그래서 같은 궁녀 출신인 전경협 아가타라는 훌륭한 교우를 알게 되어 희순은 남은 식구를 데리고 아가타의 집으로 이사해 함께 살게 되었다.

며칠 후 전경협과 박해를 피할 방도를 의논할 즈음 갑자기 포졸들이 달려들었다. 이때 희순은 태연하게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마중나가 너무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청하고 음식으로 온 가족을 격려했다.

감옥에 갇힌 그녀는 동거하며 의지하고 지내던 교우들도 다 먼저 치명한 박희순 루치아를 생각하며 그녀의 침착하고 애정 어린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치명하기 전날 형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청이 하나 있는데 내 목을 벨 때 냉정을 잃지 않도록 칼날을 잘 세워 두었다가 결코 헛된 칼질 말고 단번에 내 목을 잘라주기 바라네. 아멘.”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작은공동체, 200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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