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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한아기 바르바라

2017.01.09 16:17

기도방지기 조회 수:321

포청에 끌려 가 가혹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천주십계 도리를 설명했으며 형벌 중에서도 외모에 혼연한 빛이 역력했다 한다. 

 

성령님 타오르는 사랑의 불가마여 !

저희를 가르치시어 지혜와 인내로써 살게 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믿음이 약한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녀 한 바르바라를 본받게 하소서 !

성녀 한 아기 바르바라시여 저희 위해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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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한아기 바르바라는 교우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열심한 교육을 받았으나 세속 일에 마음이 빠져 부모님의 지도를 따르지 아니했다. 청춘을 무질서하게 절도 없이 지내며 쾌락을 즐겼다. 마음 어느 한 구석엔 봉교(奉敎 : 천주의 가르침을 믿고 실행)할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외교인에게 출가하고 말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딸 바르바라를 찾아가다가 김아기 아가타를 만났는데 김아기가 한아기에게 개과천선하기를 간곡히 권하더더라는 말에 황연히 깨닫고 이때부터 열심히 배우고 익혔으며 이에 주님의 은총이 한아기에게 내려와 이전 생활을 말끔히 청산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

천주께서는 그의 굳셈을 시험하기 위해 나이 서른 살에 남편과 세 남매를 모두 여의게 하니, 친정으로 돌아와 열심히 수계하다가 김아기 집에 가서 같이 거처하게 되어 망건(網巾) 만드는 것을 거들며 자주 제재하고 냉담자를 권면하며 외인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또한 죽어가는 유아만 있으면 쫓아가서 대세를 주어 많은 영유아의 영혼을 구했다.

이렇게 열심히 수계하므로 당시 교우들이 이 두 사람을 뛰어나고 덕행이 있는 교우로 평가했다. 한아기는 열렬한 마음으로 순교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1836년 10월 김아기 아가타, 김업이 막달레나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어 포청에 끌려 가 가혹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천주십계 도리를 설명했으며 형벌 중에서도 외모에 혼연한 빛이 역력했다 한다. 김아기와 같이 형조로 이송 되어 4년 옥고 끝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치명하니 성녀의 나이 48세였다. 기해년 박해에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아홉 분이 순교했는데 그 중 여섯 분이 여교우였다.

이소사, 박희순, 김아기, 한아기 바르바라, 그리고 김업이, 박아기 등인데 이 중에서 박희순, 박아기를 제외한 네 분은 이미 4년 전에 감옥에 갇혀 있어 형 선고를 한 번 받은 분들이다.

형장에서의 상황은 이미 이광헌 때 기술한 바 있어 생략하고 그 때의 상황을 앵베르 주교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5월 27일 월요일 새벽에 가까스로 시체를 훔쳐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전히 이들을 장사지내기 위해 둔 작은 터에다 함께 묻었습니다.

나는 행복한 유럽에서와 같이 그들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귀한 향료를 바르기가 얼마나 소원이었겠습니까 마는 우리는 가난도 하거니와 그렇게 한다면 헌신적으로 이 거룩한 사업을 맡아 하는 교우가 너무나 큰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남녀별로 각각 옷을 입히고 시체를 자리에 싸서 묻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많은 보호자를 천국에 보냈고 내가 바라는 바와 같이 어느 때고 조선에 천주교가 왕성해지면 이 시신들이야말로 국가적인 유물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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