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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죽음과 친구가 되기

“Martyr”(순교자)라는 단어는 그리스말 “증거자”에서 온다.
물론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증언한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또한 신앙이 어떻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와 평온함을 갖고
죽음과 대면 할 수 있게 하는지 증언한다.
물론 순교자의 죽음은 보통 고문과 폭력이 수반되는데,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허락되는 예외적인 운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는 고통과 두려움이 예외 없이 따라온다.
그리고 가장 좋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모든 익숙하고 친밀한 것으로부터
떠나 홀로 계속 가야하는 순간을 깊게 생각할 때, 두려움은 피할 수 없이 밀려온다.
그런 사실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증언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죽는 이들 까지도 거룩한 순교자들처럼 증언하고
섬김을 표현할 수 있으며, 남는 사람들의 신앙을 강하게 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다.

죽음에 대하여 그러한 공적인 증언을 해준 사람들 중에 시카고의 사랑 받는 대주교였던 죠셉 버나딘 추기경이 있다.
죽음 앞에서 그가 보여준 용기와 평정은 그가 성취한 다른 많은 일에 대한 기억보다 더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96년 죽음이 다가왔을 때, 버나딘은 미국의 가톨릭 교회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초대 사무총장이었고, 후에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핵전쟁에 관한 주교들의 사목교서를 초안한 주교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신시내티 교구장을 지냈으며,
54세에 추기경에 임명되어 시카고의 교구장이 되었다.
이밖에도 생명의 거룩함에 접근한 교서,  「솔기없는 옷」을 작성하였다.
이 문서에는 교회의 낙태반대, 사형제도 및 안락사 반대, 평화와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
사회의 가난하고 가장 연약한 이들에 대한 투신 등, 교회의 입장에 합류하는 일관성 있는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그의 공적생활의 모습은 이러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또 다른 측면, 덜 보여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수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몇 명의 사제들 그룹이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그를 만났다.
그들은 버나딘의 삶이 교회에 더 치중해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에게 더 집중되어 있는가를 고려해 보도록 청했다.

그들의 질문은 버나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는 자신의 삶에서 많은 우선순위들을 재고하였다.
먼저 그는 매일 아침 더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쏟았다.
그는 저금을 다 비워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변화는 그의 외모에조차 반영되었다.

한 때는 풍채가 좋았으나 점차 생애 마지막 시기의 모습처럼,
더 수척하고 수도자다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모든 것은 조용한 회심의 과정이었지만,
성공한 한 교회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앞으로 다가 올 시련에 그를 준비시켰다.

1993년 초에 버나딘은 혹독한 시련에 휘말렸다.
한때 신시내티의 신학생이었던 사람이 당시 그의 교구장이었던 버나딘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한 사건으로 그 시련은 시작됐다.
이런 비난에 당혹스러웠지만, 버나딘 추기경은 차분하게 확신을 갖고 응답했다.
그는 단호하게 그런 주장을 부인하고, 그가 직접 그런 사건들을 다루기 위하여
설립한 심사위원회에서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대방의 인격에 대해 비난하기를 거부했으며,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사건은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면허가 없는 치료사의 말을 들었던 상대방은 그의 기억이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 즉시 고소를 취하했다.
버나딘의 명성은 씻을 수 없게 손상되었지만, 그는 에이즈로 죽어가던 그 젊은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그를 용서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행복한 결말을 상으로 받으며 복음에 대한 강력한 증언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버나딘의 십자가의 길에 있어서 그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었다.
위의 사건이 해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나딘은 기자회견을 열고 그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이 개인적인 정보를 그의 “가족”인 시카고의 시민들과 나누고 싶은 모습은 버나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솔직함은 교회이든, 사회이든, 공직자들의 전통과 대조를 이루었다.
가장 건강한 상태에서 실제로 장례식때까지 계속하여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버나딘은 담당의사들에게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지라고 부탁했다.
수많은 미국의 가톨릭인들이 수술, 방사선치료 등 그의 치료에 관한 세부사항까지 알게되었다.
교구장의 일상적인 의무 이외에 그는 같은 암환자들의 비공식 담당신부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수백 명의 환자들이 그에게 다가와 기도와 지지를 청했다.
그는 병든 사람들을 만나고 직분을 행하면서 사제의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했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버나딘은 생명의 거룩함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과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선물은 고귀한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인간의 약함과 연대하는 모습에서 더욱 더 가치 있고 빛을 발했다.
교구민들에게 보내는 사목서한에서 그는 회복기동안 “밤들이 얼마나 긴가를 발견했으며...
때때로 그전에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 울고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얼마나 많이 하잘 것 없고
중요치 않은 일로 소모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96년 8월 그는 다시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암이 간에 전이되었고 수술조차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에겐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대교구 일에 대하여 말한 후,
그는 모여든 기자들과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인다.
“나는 참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내가 평화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삶의 이 순간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죽음을 적이나 친구로 바라볼 수 있다.
적으로 본다면, 죽음은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러면 죽음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죽음을 친구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태도는 참으로 달라진다.
신앙인으로서 나는 죽음을 친구로, 지상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는 이동이라고 본다.”

이 메시지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어느 주일날 강론의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배경과 그런 권위에 의해 표현될 때에 메시지는 비범한 힘을 가진다.
추기경의 발표에서 헨리 나웬의 영향을 감지한 사람들은 틀리지 않았다.
버나딘은 후에 나웬의 방문을 받고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표현했다.
나웬은 추기경을 방문하고 죽음을 친구로 여기는 것에 관해 조언을 했다
(그러나 나웬은 같은 해인 1996년, 추기경보다 앞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시기의 노력은 버나딘 자신의 책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의 선물」에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인간의 조건에는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는 것,
그리고 만일 우리가 ‘놓아버린 다면’, 만일 우리 자신을 온통 하느님의 손에 맡긴다면,
선이 이긴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썼다고 말한다.
신뢰하고 놓아버리는 과제는 일생 걸리는 과정이며,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라고 버나딘은 알려준다.

1996년 9월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교로서 나는... 인간 생명의 고유한 가치,
그리고 생명에 대한 우리의 공동 책임이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애썼다.
나의 삶이 천천히 사라져 가는 때에, 나에게 주어진 현세의 시간이 매시간,
매일 마감되는 때에 나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확신이, 생명이, 하느님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선물이며
우리 모두에게 위탁된 선물이라는 확신이 다시금 선명해지고 있다.”

마지막 주간에 생명의 불꽃이 눈에 띄게 짧아지면서 버나딘은 단지 동료 가톨릭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무신론자들, 불가론자들로부터도 엄청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쇠잔한 모습이지만 신앙으로 충만한 사람이 죽어 가는 방식으로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고
증언하는 모습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버나딘 추기경은 1996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날 시카고시는 정지되었으나, 그의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그의 책이 발간되었고 죽기 며칠 전 그는 봄이 겨울에 따라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봄에 살아있지 않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곧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경험할 것이다.
비록 죽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이 지상에 사는 동안 나의 온 힘을 다해
그분을 섬기도록 부르셨던 것처럼, 지금은 집으로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에 그리고 후에

그리스도교는 우리 존재의 신비에 대하여 유일하게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종교가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교사들이 인간존재의 근원, 의미, 종착점에 대하여 질문들을 던져왔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있어 새로운 것은 한 사람­하느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미래 운명의 베일이 걷혔다는 것이다.
죄를 벗어버리고 ­무기력의 무게를­ 그리스도의 영을 입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영으로 살게 하고
삶을 포옹하며 한 뼘 같은 인생을 믿게 하였고,
지상이란 그 너머에 있는 신비스러운 심연에 열려있는 작은 항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했다.

예일대학의 학생들로 가득찬 교실에서 헨리 나웬은 어느 날 칠판에 자신의 생년월일,
1932년을 적고 짧은 줄을 그으며 2010년이라고 적고 그 뒤에 물음표을 찍는다.
“이것이 내 인생을 표현할 수 있다”고 그는 청중에게 말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기간”
(그 방에 있었던 나웬과 학생들 중의 아무도 나웬의 생명줄이 실제로 얼마나 훨씬 짧았는가를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흔들며 칠판으로 다가와 칠판의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줄을 그으며 말했다,
“나는 어디에선가부터 와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웬이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 존재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다 ­
그리스도교 전통은 그렇게 가르친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종착점이다.
인생에서 우리의 과제는 ­그것이 짧든 길든, 슬픔으로 무겁든 축복으로 가볍든 혹은 대부분의 삶처럼
슬픔과 축복이 혼합되어 있든­ 우리의 진정한 종착점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을 찾는 것이다.

명성과 재물, 혹은 위대한 성취 그 어떤 것도 우리와 함께 지상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
회한, 증오, 분노, 그리고 후회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치 황금처럼 그것들을 생각하며 매달린다.
우리와 함께 그것들을 가져가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려는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것들을 놓거나 벗어버리는 길을 배워야 한다.
놓아 버리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길이다.
죽음은 우리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남긴 일들을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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