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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자연적인 행복

도로시 데이는 그의 회상록인 「긴 외로움」에서 포스터라는 남자에 대한 사랑이야기와
그의 영적인 여정을 서두르도록 포스터가 했던 역할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 법적으로 결혼관계에 있었던
그 남자는 무정부주의자이고, 영국계통이었으며, 생물학자였다.”
그들은 1920년대 초기에 만났고, 곧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데이는 그들의 관계가 “법적인 결혼”이었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는 “가족이라는 기관”에 대한 경멸을 결코 숨기지 않았으며,
그들의 관계가 단순히 “동지관계”라고 여겼다.
그러나 데이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이러한 “자연적 행복”을 누리던 시기에 데이는 더 큰 행복을 상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포스터는 자연을 맹렬하게 사랑했고, 그래서 종교를 무시했으나,
데이는 이 자연적 행복으로부터 전혀 반대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모든 것들의 창조주”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는 산보하는 중에 기도하기 시작했고,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안 계실 수 있는가?”
그는 포스터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거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결국 둘은 데이가 아이를 낳고 세례를 받게 하면서 갈라서고 말았다.

아마도 어거스틴의 경우처럼 도로시 데이의 “순전히” 인간적 사랑과
“더 고귀한” 종교적 염원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대립된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고 썼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갖게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 졌으며, 그분과 함께 공동창조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데이는 “온전한 사랑, 육체적이며 영적인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데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었다.
“자연적 행복”을 경험하면서 그는 더 큰 행복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
포스터에 대한 사랑, 딸에 대한 사랑, 지구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가난한 이들과 낙오된 이들에 대한 사랑이 모두 더 큰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이 모든 것은 피터 모린과 만난 수년 후에 가톨릭 일꾼공동체로 통합되었다.

어거스틴 성인은 삶을 “사랑에 이르는 길”이라고, 무엇이 우리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어떻게 적절히 사랑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사랑 속에,
안락과 소유, 혹은 명성 따위에 의해 한정된 감옥 속에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을 선택하여 벽을 쌓기까지 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가족, 그들의 나라, 혹은 그들의 교회 주위에 울타리를 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우리를 더 깊이 초대하는 소리에 우리가 열려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랑이 지평선으로 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실존을 제한하지 않을 때,
모든 것들은 그들의 숨겨진 깊이를 드러내고, 우리를 더 앞으로 이끈다. 단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들까지도 무한한 것을 보여주는 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우리의 이웃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두 가지 측면으로 대답한다.
첫 번째 측면은 하느님을 “온 마음과 온 정신, 그리고 힘과 영혼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첫째 측면은 즉시 이어 두 번째 계명과 연결된다.
“첫 번째 계명에 못지 않은” 이것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명의 구체적인 예를 예수님은 사마리아사람의 이야기로 표현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정통파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한 사마리아사람이 길을 가다가 상처입고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나그네를 발견했을 때,
가던 여정을 멈추고 돌보아준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예를 우리는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를 가지고 낳아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서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지 볼 수 있다.
또한 열정적이며 보호적인 사랑으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한 부모이외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몰로카이의 다미안 성인, 오스카 쉰들러 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
특히 오스카 쉰들러의 경우는 그가 보통기준에서
“성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면서도 그런 사랑을 실천한 예다.

아마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기준은 우리가 결코 그 수위에 완전하게
도달할 수가 없으며 다만 노력해야 하는 하나의 지평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온 마음과 몸과 정신과 영혼을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되었다 해도 예수님이 더 간단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였을 때 너희는 나를 받아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너희는 나를 찾아주었다”는 기준이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주님에게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여기에서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에 숨겨진 의미를 드러낸다.
즉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했다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마태오 25,31-46).

성인들은 이 신비스러운 대칭에 내포된 의미에 따라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웃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믿었다.
길가의 벌거벗고 피 흘리는 사람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든 사람들,
우리가 빵을 나누는 굶주린 이들, 우리가 짐을 가볍게 해줘야 하는
외로운 이들 속에 예수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등식은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게 보인다.
한편으론 넝마를 걸친 걸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하느님의 아들이라니.
그런데 양편을 공평하게 균형 잡아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부족하고, 한편으로 원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거지들이다.
마더 데레사가 썼던 것처럼, “하느님은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 헐벗은 이들, 집 없는 이들과
그분 자신을 동일시했다. 굶주림은 단지 빵 뿐만 아니라 사랑, 보살핌에 대한 굶주림으로,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헐벗음은 단지 입을 것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누는 연민에 대한 헐벗음이다.
집 없음은 단지 돌로 만든 있을 곳에 대한 것만 아니라,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여정을 가든, 이웃들을 사랑하는 여정을 가든
궁극적으로 똑 같은 종말에 이르게 된다. 갚음을 바라거나, 계산하지 않고 줄 때마다
우리는 사랑의 빛을 반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랑과 행복

그러나 그런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대답은 우리 각자가 알고 있는 사랑과 행복의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대상을 붙잡고 계속 움켜쥐려는 소유적인 본능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랑에서 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그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잃게 될 경우 불행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참으로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랑에 근거하는 행복은 너무나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성인들은 이런 사랑을 한 것이 아니다.
복음이 지닌 역설들 중에 하나는 우리가 버릴 때에 참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갚음에 대한 기대를 갖고 하는 사랑은 시장법칙에 불과하거나,
시몬 베이유가 말한 것처럼 중력의 법칙일 뿐이다.
참다운 사랑은 중력의 법칙을 거부한다.
참다운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주는 것으로 표현된다.

행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자신만을 추구하는 행복은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
나눔에 의하여 소멸되는 행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만큼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만족에서 오는 행복은 가짜이며, 일시적이고, 항상 슬픔으로 끝난다.
그런 가짜 행복은 우리의 정신을 편협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참다운 행복은 이타적인 사랑에서 발견된다. 이타적 사랑은 나눌수록 증가되는 사랑이다.”

사랑의 숨결이 없는 삶은 비참한 삶이다.
충분한 물이 없는 식물은 한동안 메마르게 살 수 있겠지만, 꽃을 피울 수는 없다.
우리의 삶도 사랑이 호흡하지 않는다면 이와 마찬가지이다.
또한 동시에 우리 각자의 중심에는 숨겨진 신원이 있다.
그것은 우리자신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잠들어 있으며,
마침내 입맞추어 깨어나게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입맞춤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띈다.
프란치스꼬의 경우 그것은 나병환자의 입맞춤이었다.
안토니오 성인에게는 성서구절로서, 그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사랑이 우리의 삶에 어떤 형태로 들어오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를 보다 나은 자아가 되도록 초대한다.
더 용감해지고, 더 친절하며, 더 용서하고,
더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더 변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만든다.
많은 성인들은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사랑의 눈길을 받았던 자캐오와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알게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
이 사랑 안에서 그들은 새롭게 시작하고 불가능한 것들을 하며,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용기를 발견했다.
요한 복음사가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사랑합니다”(Ⅰ요한 4,19)라고 썼듯이.

“지옥은 더 이상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죠르쥬 베르나노스는
그의 작품 「어떤 시골신부의 일기」에서 말한다.
그러나 “가장 밑바닥에 내려간 인간도 비록 그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안에 사랑하는 힘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베르나노스는 쓰고 있다.
이 사랑의 능력은 비록 상실되고, 잊혀질지라도 모든 인간존재의 고유한 핵심, 즉 영혼을 형성한다.
“구원”의 의미에는 항상 이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재발견되고 배양된다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소중한 것을 잃었으나, 이제 다시 발견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날 때, 또 다른 라자로가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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