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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노동에서 오는 기쁨 없이 살아가는 것은 즐거움이 없는 삶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사막의 동굴에서 고용주나 십장이 없이도 초기수도자들은 매일 많은 시간을 손노동으로 보냈다.
밭을 가꾸고, 바구니를 엮거나 만드는 일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바오로 사도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마라”(Ⅱ데살로니카 3,10)는 엄한 훈령대로, 필요한 물질적 요구들을 스스로 채웠다.
노동이 전혀 영적인 삶의 목적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일에 의해 치유되는 것으로, 지루함과 슬픔을 몰아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막의 교부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효율성이나 보상의 차원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폴 원장은 동료 은수자들 처럼 많은 시간을 종료나무 잎파리로 바구니를 짜는데 보냈다.
바구니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을 때, 그는 불을 질러 바구니를 다 태우고 나서 다시 시작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를 바보 같은 모습이라고 간주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 수도승들의 연대기를 보면 다른 의미가 있었다.
폴원장은 그런 행위를 통하여 “손으로 일하지 않고서 수도승은 그의 자리에 머물러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며,
거룩함의 정점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영원의 빛으로 볼 때에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이와 비슷하게 바보짓으로 보인다.
우리는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질 마루를 닦는다.
또한 어떤 사람의 마루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책을 쓰고 발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조건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노동(일)은 단지 매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다.
또한 노동은 우리가 청구서를 갚는 방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노동은 어떤 의미에서 이 우주에 인간의 독특한 자리를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계속되는 창조사업에 참여한다.
또한 노동으로 물질과 맞서고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우리의 모습도 형성시켜 간다.

혼자서 하든, 대중의 갈채 속에 하든 노동은 온 마음을 다해 수행 할 때
오로지 자유롭게 주어질 수 있는 선물이 된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개입되지만, 언제나 우리의 영혼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행복에 대한 모든 믿을만한 처방은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자주 행복에 관한 대중적 “광고들”은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족쇄같이 채우면서
행복을 휴가나 “여가시간”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예치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노동은 단순히 성가신 필수품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은 생계를 버는 수단이며 행복은 그 필수품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휴가를 즐길 때에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개입된 과제, 일,
노동에는 더 깊은 행복이 있으며 우리의 존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 준다.
성인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올바른 정신에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의미나 행복은 실제로 모든 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과 거룩함

레오 톨스토이는 말년에 이 주제를 “도덕에 관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한가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에서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톨스토이는 특히 사회적 기대가 주는 부담과 영적인 갈망사이에서 느끼는 긴장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중년기에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그는 이제 거의 자살을 생각할 만큼 절망 속에 있다.
특권과 안락의 삶을 누린 후 그는 이제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성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행복의 추구가 거룩함에 대한 초대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룩함이란 삶을 하느님의 규율과 일치시키는 것이고 톨스토이가 이해하는 한, 산상수훈은 이 거룩함에 대한 요약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미의 거룩함은 톨스토이가 보건대, 교회 혹은 수도원보다 노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서 더 발견된다.
그는 자신이 속한 특권계층과 그의 땅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비교해 보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아무리 고달파도 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종일 일하고 삶의 선함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면서 밤에 잠든다.
물론 농민의 삶에 대한 이런 인식에는 감상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농민들과 그들의 단순함, 신앙, 그리고 노동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면서 톨스토이는 그에게서 빠져나간 행복을 찾고자 했다.

“한가한 사람들에게...”에서 톨스토이는 한 이상적인 젊은 청년의 입을 빌어 자신의 이상을 표현한다.
“나는 나의 전 재산을 포기하고 시골에 가서 가난한 이들 사이에 살 것입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손으로 노동하는 것을 배우며, 내가 받은 교육이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기관을 세우거나 책을 써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형제로 살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땅에서 단순한 삶을 시작했다. 농민들과 함께 들에 나가 일도 했다.
그는 “게으름이 아니라, 노동이 모든 인간 존재의 행복을 찾기에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조건”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가르쳤던 이상을 결코 완전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가족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또한 그 자신도 괜찮을 때에는 들에 나가 일했지만, 집에 돌아와선 비단 잠옷을 입고 잤다.
행복에 대한 그의 추구는 모호한 측면이 많았고, 82세에 죽을 때까지 갈라진 양심으로 괴로워했다.

올바르게 사는 것...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의 기반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 삶을 구성하는가? 톨스토이의 생각에 의하면, 올바른 삶이란 단순히
외적인 도덕규약에 복종하는 것 그 이상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의 행복과 거룩함에 대한 추구가 한 곳에 모이는 조건,
궤도 위에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조건은 보편적인 도덕률이 우리 영혼에 실제로 새겨질 때에 가능하다.
그러한 삶은 이 세계의 상식적인 지혜를 거부하는 삶이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어떤 비전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기심과 경쟁보다 사랑과 연대를 나누며 사는 삶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그가 그렸던 조화를 결코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가?
노동, 행복, 거룩함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성인들의 삶에서 더 넓은 지지를 받았다.

노동과 기도

노동의 필요를 발견한 것은 성인들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보면 마침내 하느님께서 불순종한 아담과 대면하신다.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흘려 일하여 빵을 먹게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을 저주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인들에게 도전은 필수품과 행복을 화해시키고, 노동과 매일의 과제가 축복 받으며
거룩한 삶을 향해 가는 길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었다.
14세기 독일의 신비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올바르기 위하여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하나는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를 배워야 하고, 그 곳에서 하느님을 꽉 붙잡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을 다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며 다양한 행위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는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붙잡는 것”, 노동과 기도 사이의 조화를 찾는 것은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으로 돌아가는 수도생활의 기본 특색이다.
서구 수도 전통의 창설자인 베네딕도 성인은 550년에 죽은 이태리인 수도원장으로서 매일의 생활이
기도, 공부, 그리고 노동으로 조심스럽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규칙에서 말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에 어떤 것도 나머지 것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고귀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란 들에서 일할 때에도 초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노동으로 살아야 참다운 수도자이기 때문이다.”

베네딕도의 사상은 단순한 표어, “기도와 노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두 행위가 함께 온전하고도 거룩한 삶의 보완적인 차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표어이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노동과 기도의 조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도생활은 기도라는 거룩한 영역과 “세상적인” 노동행위를 인위적으로 갈라놓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삼는다.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동­ 하느님의 일­이므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손노동은 하나의 기도형태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노동이 기도가 될 수 있는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손은 얌전하게 포개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한 기도와 노동의 연결은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느님 앞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이 기도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려면,
노동의 영(정신)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면서 기도할 때처럼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시키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그런 영이 있어야 한다.

설거지나 정원의 풀에 물주는 등 별로 정신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노동을 할 때에 이런 영을 가지는 것은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를 치거나 무거운 기계를 움직이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도회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선을 갖고 있다.
노동할 때 그 선에 대한 적절한 주의와 존중심을 갖고 한다면,
우리의 노동은 기도로 가득 차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주의하게 일의 선에 대한 존중 없이 하는 일은 기도의 성격을 잃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고전서 가운데 하나인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연습」에서 정교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 불란서 가르멜 평신도 형제회 회원이었던 사람과의 대화, 서신에서 발췌하여 만든 책이다.
이 사람은 부활의 로렌조형제로 알려져 있는데,
중년의 나이에 오랫동안 군복무를 한 뒤 파리의 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고 한다.
농촌출신이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는 부엌일을 하게된다.
80세에 죽을 때까지 부엌에서 40년 동안을 냄비와 후라이팬 속에서 살았다.
살아 생전에 위대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사후에 출판된 책에 의하여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영적 대가들 중의 하나로 인정된다.

그의 영성의 본질은 책의 제목에서 명료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영성생활의 방법은 단순하다.
항상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깨어 있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위가 거룩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끊임없는 기도의 상태나 “하느님과의 대화”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기본적으로 하느님이 지금, 이곳에 하고 있는 일 속에 계시다고 확신하는 행위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일하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부엌의 딸그락 딸그락 하는 소리 속에서, 때때로 이것저것을 청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마치 성체조배 때처럼 깊은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모신다.”
“우리의 성화는 우리의 일을 바꾸는데 있지 않고, 지금하고 있는 평범한 일들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데 있다.
하느님은 일의 위대함을 보시지 않고, 그것을 얼마나 사랑을 갖고 하는가를 보시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로렌조 수사의 가르침은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한 일”, 수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과 “세상 속의” 사람들이 하는
현세적인 일 사이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준다. 실상 성인들도 “보통의 일”을 하고 산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교사, 간호원, 로렌조 수사 같은 부엌데기도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시성된 성인들이 성직자이고 수도자였어도 또 다른 많은 성인들이 실제로는 온갖 종류의 일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그 일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 이라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주장은 옳다.

결국 “거룩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해를 끼치거나 정직하지 않은 일이 아닌 한 “영광스럽게” 변화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참으로 어떤 형태의 노동이건 간에
섬김이나 자선의 기회로,
기도의 때로,
혹은 아름답고 진실하며 생명을 주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자주 주의를 끌지 못하거나 별로 특징이 없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풍요로운 은총과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일터를 거룩한 자리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매일 만나는 성인들이다.

노동과 거룩함에 관하여 19세기의 예수회 회원이며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고, 대죄로부터 자유로우면 모든 하는 일이 그 안에 죄가 없는 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기도만이 아니라, 노동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모든 일은 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당신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그 분은 모든 것을 통하여 위대한 존재가 되신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스토퍼 성인은 강을 건너는 여행자들을 등에 업고 날라다 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거인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그가 한 아이를 업고 있었는데 갈수록 무거워졌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지요!” 하고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온 세계를 업고 있었어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왕이지요!”
일상의 일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워도 하는 일이 우리가 찾고 있는 왕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다르게 평범한 과제에 접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성인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어떤 일들은 확실히 포기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이다(로마군대에 복무했던 투르의 마르띠노 성인 등).
또한 도덕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일(영국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의 경우)이나,
더 넓은 자리에서 일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베드로사도,
“나를 따르라,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에 하던 일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나 성인들이 표현했던 것처럼, 거룩함으로의 초대는 보통 하는 일을 단념하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 안에서, 삶의 조건 안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라는 초대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우리의 소명, 행복에 이르는 참다운 우리의 길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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