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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대철 베드로

2018.03.03 09:27

기도방지기 조회 수:239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런 것쯤으로 죽지 않아요

 

성령님 영원한 선이여 !

저희가 선에 항구하게 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저희에게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저희가 성 유대철 베드로를 본받게 하소서 !

성 유대철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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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10월에는 성교의 진리를 위해 용감하게 순교한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그가 곧 유대철 베드로이다. 그의 순교 기록은 우리에게 까메리노(Camerino)의 유명한 순교자 聖 베난사오(Venantius)의 일을 생각게 하여 주는 것으로, 행적과 고난 기록에 있어서도 그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유 베드로는 조선천주교에 성직자를 모셔 왔으며 신자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던 殉敎聖人 유진길(劉進吉)아우구스띠노의 맏아들로 1826년(純祖26)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 전체를 일컬어 殉敎一家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모친과 누님이 고집스러운 외교인으로 끝내 입교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더우기 그들은 교우들을 욕하고 심지어는 집안 식구들 중에서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까지도 괴롭혔다. 

 

본성이 충실하고 寬厚하였던 베드로는 일찍부터 부친을 본받아 모든 신심의 의무를 충실히 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모친과 누님은 이러한 그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다시 祖上崇拜에 끌어넣으려고 유혹하였다. 그들이『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고 하면 베드로는 언제나 공손한 말로 하늘의 임금、만물의 주인을 따르는 일이 바로 진리의 길임을 설명할 뿐이었다. 더우기 그는 천주 앞에서 모친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모친께 대해서는 항상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박해가 시작되자 그의 어린 마음속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당시 옥에 갇혀있던 부친과 여러 증거자들이 보여준 훌륭한 모범은 이러한 그의 열성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1839년 7월경 스스로 관청에 자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이것은 곧 천주께 대한 그의 진실된 믿음의 표현이었다. 

 

관장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듣고는 교우의 자식임을 알자 옥에 가두게 하였다. 그를 배교시키기 위하여 갖은 위협과 고문이 행하여 졌으나 베드로는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피를 보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관헌들은 옥중에서도 자주 다른 형벌을 가하였다. 

 

하루는 옥쇄장이 담뱃대로 그의 넓적다리를 내리쳐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며 『이래도 아직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고 소리쳤다. 그가 『그러믄요. 이렇게 한다고 배교할 줄 아세요』라고 대답하자 분개한 옥쇄장은 벌건 숯덩이를 집어넣으려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결코 두려워함이 없이 순순히 입을 벌리자 이번에는 옥쇄장이 기가 막혔는지 물러나고 말았다. 다른 교우들이 『너는 그것을 가지고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는『저도 알아요. 그것은 쌀 한 알을 한 말에 비기는 것과 같은 것이어요』라고 대답하였다. 하루는 오랫동안 매를 맞고 기절한 채 다시 옥에 끌려왔다. 함께 갇혀있는 이들이 정신이 들게 하려고 애를 써서 깨어나게 하니 그는『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런 것쯤으로 죽지 않아요』라고 굴하지 않는 의지를 나타내었다. 

 

베드로는 문초 14회, 고문 14회에 笞刑 6백대 이상과 治盜棍 45대 이상을 맞아 온 몸이 피투성이요、뼈가 부러지고 살이 헤어졌으나 항상 기쁜 낯빛을 잃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천주께 대한 그의 사랑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었고, 그 힘으로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어떤 때는 형벌을 비웃으며 형리들을 놀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베드로가 그의 몸에 너덜거리며 달려있는 살점을 떼어 형관에게 던지니 그들은 놀라기도 하며 감탄하기도 하여 모두 치를 떨었다한다. 

 

유년기를 갓 벗어난 어린이에게 이와 같은 혹형을 가하였다는 사실과 이를 평안하게 받아냈다는 사실에 혹 의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용맹을 목격한 사람은 한결같이 이 사실을 증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바 다만 우리는 이러한 용기 앞에 깊이 머리 숙일 뿐이다. 

 

관헌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군중이 자극을 받을까 두려워 감히 공공연하게 처형하지 못하였다. 물론 관헌들은 그가 매를 못 이겨 죽을 줄 알았던 것이다. 마침내 刑曹에서는 그를 몰래 죽이기로 결정하고 10월 21일 옥중에서 교수형에 처하니 위대하였던 그의 행적에 천국의 영광이 내려진 순간이었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13살이었다.

 

[가톨릭신문, 1984년 8월 19일, 김옥희 수녀(한국 순교복자회ㆍ오륜대순교자기념광장)]

 

 

그는 103위 성인 중 가장 어린 순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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