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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 효주 아녜스

2017.08.07 08:48

기도방지기 조회 수:1849

 

 

포장은 효주 아녜스 자매를 어르기도 하고

별별 약속을 다하며 배교시키려 하였으나 얻은 것은 거절뿐이었다.

 

이에 포장은 혹독한 형벌을 가했으니

효주 아녜스는 9월 3일에 순교한 6명의 신자 중에서 가장 악독하고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신자들은 예수와 마리아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 포졸들과 관원들이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였지만,

 

효주 아녜스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침묵 속에서 기도를 드리며 마음속으로 우리 구세주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포장은 이와 같이 훌륭한 항구심이 어떤 마력의 힘 때문이라 생각하여 등에 몇 가지 주문을 쓰게 하고,

불에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그 글자들을 열세 군데나 뚫게 하였지만,

이러한 형벌에도 그녀는 전혀 고통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후 포졸들은 효주 아녜스를 끄집어내어 학춤형을 가하며 온갖 비웃음과 욕설을 퍼부었지만,

효주 아녜스는 용기를 내어 그 괴로움을 달게 참으며 굳게 마음을 가졌고,

더욱더 열심히 자기의 고통을 주님께 바치며 묵묵히 참아 받았다.

 

이러한 형벌을 가한 후,

포장은 옷을 벗긴 채로 그녀를 죄수들의 감방에 들여보내 갖은 욕을 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동정녀들의 천상배필이 그녀를 구원하러 오셔서 초인적인 힘을 넣어주어

한 사람이 남자 열 사람을 능가할 만큼 힘을 강하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떤 신비스러운 힘에 눌려

마침내는 옷을 돌려주고 그녀를 여자 감방으로 데려갔다.

 

 

 

성령님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신분 !

저희를 가르치시어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안에 살게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저희를 불상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녀 김효주 아네스를 본받게 하소서 !

성녀 김효주 아녜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9.30.jpg

 

기해년 박해시 순교자들 중에는 유명한 동정자매(童貞姉妹)가 있었는데,

김효주 아네스와 그의 언니 김효임(金孝任) 골롬바가 그들이었다.

그들 자매가 오직 주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고 순교한 사실은

너무나 진실하고 값진 것이어서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김효주 아네스는 1816년(순조16년)경 한강근처에 있던 밤선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래 외교인 집안이었으나 부친이 사망한 뒤부터

모친과 그들 6남매가 함께 성교를 듣고 열심히 수계하였다.

 

아네스는 순전(純全)한 덕행이 외형에 드러나고 또한 숨은 덕이 많았으므로

성교에 입교한지 얼마 안되어 그녀의 아름다운 표양에 열복(悅服)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모친이 선종한 후 그녀는 언니 골롬바와 동생 끌라라와 함께 몸과 마음을 바쳐

동정을 지키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약20리 떨어진 오빠 안또니오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아름다운 덕을 지켜나갔다.

기해년에 이르러 군난이 차차 심하여지고 사방에서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마침내 5월 3일에는 포졸들이 아는 사람을 데리고 내려와 아네스가 있던 안또니오의 집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안또니오의 가족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피신한 뒤였으므로 당시

그 집에 남아있던 아네스와 골롬바, 그리고 3살 된 어린아이 만이 체포되었다.

포졸들은 이들을 일단 마을의 이장에게 인도하였다가 어린아이만을 남겨둔 채

아네스자매는 서울 포청으로 압송하였다.



포장은 아네스자매가 압송되어 오자 위협하기도 하고

유혹하는 약속을 하기도 하며 배교를 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답은 오로지 그러한 회유(懷萸)를 거절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포장은 몽둥이로 어깨와 팔꿈치와 무릎을 치게 하였고,

다섯 번이나 고문을 가하도록 하였다.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하늘나라의 기쁨이 넘쳐 흐르는 것 같아 소리를 지르지도,

한숨을 쉬지도 아니하였다.

 

다른 증거 자들은 예수와 마리아의 정다운 이름을 큰소리로 불러

포졸들과 관원들의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였지만

그녀들은 큰소리로 부르지도 않고 침묵 속에서 기도를 통하여 구세주와 통하고 있었다.

포장은 이와 같이 훌륭한 항구심이 어떤 마력(魔力)의 힘이라고 생각하여

등에 몇 가지 주문(呪文)을 쓰게 하고는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그 글자들을 13군데나 뚫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결코 굽히지 아니하였으며,

이에 포장은 형벌을 중지시키고 달래보기도하며 다시 형벌을 가하는 것을 되풀이 하였다.

또 하루는 형리들이 아네스를 외딴 감방으로 끌고 가서 「학춤」이라는 형벌을 가하였다.

 

이 형벌은 죄수의 옷을 벗기고 손을 뒤로 결박지어 공중에 매단 후

여러 사람이 번갈아 매질을 하는 것이었다.

몇 분만 지나면 혀가 나오고 거품이 고이며 얼굴빛이

검붉어져서 쉬지 않으면 곧 죽게 되는 것이다.

형리들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 형벌을 가하는 동시에

일찍이 들은 적이 없을 만큼 혹독히 때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럴수록 아네스는 더 열심히

자신의 고통을 천주께 바치며 신앙의 진리만을 믿고 있었다.

한편 포장은 동정녀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순결을 빼앗고자 하여

옷을 벗긴 채로 아네스를 죄수들의 감옥에 들여보내 갖은 욕을 당하게 하였다.

이때 영혼들의 천상배필(天上配匹)께서 이러한 위기를 알고는 그녀를 구원하러 오셨다.

그 은총의 힘은 마치 옷처럼 그녀의 몸을 덮어주고,

초인적인 힘을 불어넣어 여자 한 사람이 남자 열 사람을 합친 것보다도

더 강한 힘이 되도록 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2일 동안을 가장 악한 사람들 중에 있었지만

그들은 어떤 신비스러운 힘에 눌려 이제 새로운 아네스가 된

이 동정녀의 순결을 범하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마침내 형리들도 그녀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옷을 되돌려 주고 다시 여자 감옥으로 데려갔다.



그 후 아네스는 언니와 함께 형조로 이송되었으며

형조판서에게 그 동안 포청에서 받은 모욕을 호소하였다.

형조판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노하여 국법대로 포장과 형리들을 처벌하였다.

그리하여 이때부터는 여교우들이 그러한 모욕을 당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아네스는 갖은 형벌을 받았으나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는

몇 달 후인 9월3일, 항상 함께하던 언니 골롬바를 남겨두고 24세로 참수 치명하였다.

 

 

 

 

 

성화 '두 동정 순교자' 로마 한인 신학원 이양
 
고 장발 선생 1949년 작품
50년 로마 전교지방 미술 전람회 이후 로마 베드로신학원 지하 경당에 전시돼
 
 
우리나라 서양화단의 개척자이자 가톨릭 미술의 선구자인 고 장발(루도비코) 선생의 성화 작품 ‘두 동정 순교자’(Duae Virgines Martyres <사진>)가 50여년 만에 로마 한인 신학원(원장 전달수 신부)으로 옮겨져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두 동정 순교자’는 장발 선생이 1949년 기해박해 순교자들인 성 김효임(골롬바)과 성 김효주(아녜스) 자매(당시에는 복자)를 그린 성화로, 200×100㎝ 크기의 이 유화 작품은 1950년 로마에서 열린 ‘전교 지방 미술 전람회’에 월전 장우성 화백의 ‘조선 순교자의 모후’ 3연작과 함께 출품됐었다.
 
‘두 동정 순교자’는 전람회 이후 전교지역에서 유학온 사제들과 신학생들의 숙소인 로마 베드로신학원 지하 경당에 전시돼 왔으나 지난 50년 간 이 작품을 찾는 한인 신자가 거의 없을 만큼 잊혀져 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신유박해 200주년 특별전을 위해 로마를 수차례방문한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서 담당 최승룡 신부가 베드로 신학원에 이 작품이 있는 것을 알아내고 한국 주교회의를 통해 이 성화의 로마 한인신학원 이양 작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지난 7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크레센치오 세페 추기경이 방한했을 때 당시 주교회의 의장 박정일 주교는 ‘두 동정 순교자’ 성화를 로마 한인신학원에 넘겨 줄 것을 공식 요청했고, 세페 추기경의 흔쾌한 수락으로 지난 11월 정식 이양됐다.
 
최승룡 신부는 “1925년 전교지방 박람회 때 한국 교회가 출품한 80여점의 작품 목록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반면, 1950년 미술 전시회 관련 자료는 남아있지 않아 각종 귀중한 작품과 사료들이 로마 어딘가에서 썩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애석하기 짝이 없다”며 “한국교회가 로마에 산재한 한국 관련 사료와 미술 작품을 발굴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고대했다.
 
장발 선생의 ‘두 동정 순교자’ 는 한강이 멀지 않은 서소문 밖 순교지를 배경으로 두 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평선 위에 우뚝서 있는 두 성인의 모습은 그들의 믿음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언니 김효임은 순교자의 영광과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있고, 동생 효주는 언니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두 자매의 머리에 있는 미사 수건은 바람에 날려 커다란 하나의 수건을 함께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하나의 신앙, 즉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같은 믿음 때문에 순교했다는 것을 상징해 주고 있다. 또 한복과 옷고름이 바람에 따라 강하게 휘날리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이들의 믿음이 얼마나 열렬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한편 두 동정 순교자와 함께 출품됐던 장우성 화백의 ‘조선 순교자의 모후’ 3연작은 현재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소장돼 있다.
 
[평화신문, 2002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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