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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최양업신부의 열세 번째 편지 (1)


                                                       불무골에서 1857년 9월 14일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해마다 하느님의 풍성한 은혜로 신부님께 보내드릴 기쁜 소식이 생깁니다.

지난해에는 베르뇌 장(張) 주교님과 두 분의 새 선교사 신부님들이 입국하신 소식을 신부님께 전해드렸습니다. 금년에는 페롱(Feron) 권(權) 신부님의 극적이고 기적적인 입국 소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권 신부님은 이미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번씩이나 편지로 미리 알려주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다블뤼 신부님이 (1857년 3월 25일에) 우리 포교지의 (다음 대목구장이 되실) 부주교위에 오르신 소식도 전해드립니다. 얼마나 기쁨이 넘치는 소식입니까!

가련한 우리에게 이렇듯이 풍성한 은혜와 각별한 축복을 내려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어떻게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하여 저의 목소리가 미치는 한에서 그리스도 안의 모든 신부님들과 사랑하올 형제들이 다 함께 우리를 축하 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감사드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오랫동안 쓸쓸한 심정으로 초조하게 고대하던 신부님들 의 편지 두 통을 페롱 권 신부님 편에 받았습니다. 또 신부님들에 대해서도 페롱 신부님으로부터 직접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두 번이나 페롱 신부님을 찾아가서 여러 날 동안 묵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께서 미리 알려주신 덕분으로 벌써 페롱 신부님을 잘 알고 있었고, 페롱 신부님도 저의 외로운 처지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서로 우정이 싹터 있었습니다. 또 우리가 필연적 인연으로 함께 묶여 있음을 미리 맛보고 있는 터였기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페롱 신부님이 얼마나 위태롭게, 또 많은 손해를 입으면서 외교인 거룻배를 타고 하느님이 특별히 인도하시는 손길을 따라 조선에 들어왔는지는 페롱 신부님이 직접 사부님께 더 자세히 알려드릴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우리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에 대해 많은 자료들을 찾아내서 신부님께 보고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동안 상당히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였으나 그것을 존경하올 다블뤼 안 주교님께 모두 드렸습니다. 안 주교님께서 모든 순교자들의 전반적 역사(조선 천주교 순교사)를 편찬하고 계십니다. 다블뤼 주교님께서 그 사적들을 신분님도 읽어보시도록 보내드릴 것이 확실하므로 제가 따로 신부님께 보고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지난번 편지를 신부님께 드리던 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새 교우촌으로 떠날 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으면 공소 순회를 마친후 신부님께 다음번 편지를 쓸 때 보고 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오늘 그 약속을 이행하겠습니다.

이 교우촌은 귀양간 여인과 어떤 신자 가족이 신앙의 씨를 뿌린 곳입니다. 이 여인은 1839년 대박해 때에 왕도(서울)에서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 고을로 내려와서 어떤 부잣집에 종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 마나님이 이 종을 통하여 차차 천주교의 진리를 알게 되어 열심으로 신앙을 실천하던 중 남편에게 발각되었습니다. 남편이 분노하여 엄포와 매질까지 해가면서 자기 아내의 마음을 천주교에서 멀어지도록 노력하였으나 아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남편이 그 아내를 읍내 가운데로 끌고 가서 배교하지 아니하면 관가에 고발하여 죽게 하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실한 이 여종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기로 마음먹고 재판소인 관가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광분한 남편은 자기 아내의 굳센 용기에 굴복하여 관가로 끌고 가던 도중에 마음을 바꾸고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고 말았습니다.

이 남편의 행동에서 나온 유일한 결과는 이 읍내에도 천주교 신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퍼진 것뿐입니다. 이 가엾은 귀양살이 여인의 일가친척들이 이웃 읍내에 살고 있엇는데 이 소문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해 전부터 신자들과 일체의 연락이 끊어지고 신자들의 소식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체 자기들의 서글픈 운명을 한탄하면서 지내던 터였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필요한 진리를 더 철저히 배우기 위해서 교리 지식에 더 밝은 신자들을 만나기를 무엇보다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것을 이제서야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살던 마을을 떠나 이 읍내로 이사 와서 귀양 온 여교우가 종살이하는 집 곁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정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집안처럼 지내며 신앙을 실천하고 힘을 합쳐서 그 읍내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마을 유지 중 한 사람의 부인도 끼여 있었는데, 이 여인은 그리스도의 용감한 투사로서 주님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 여인도 남편에게서 엄포와 공갈과 매질과 핍박 등 온갖 괴로움을 당했으나 조금도 굽히지 않고 굳세게 저항하여 신앙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고장에 갔을 때, 이 가련한 여인이 얼마나 거룩한 원의와 열정과 회한으로 제 말을 듣고 성사를 받았는지를 아무리 묘사하여도 믿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그 여인은 "언제쯤이나 내 눈으로 하느님의 사제를 뵈올수 있을까! 언제쯤이나 나는 사제 입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내 귀로 들을 수 있게 될까! 이러한 은혜가 내게 내려지는 날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으련마는." 하고 언제나 탄식으로 날을 지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련한 교우촌에 불행히도 예기치 않은 무서운 폭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날 어떤 노파가 다른 신자들의 뒤를 따라 처음으로 공소집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 집전에 참석하고서 더 할 수 없이 감격하였습니다.

그 노파의 한 친구는 그때까지 아무리 복음을 들려주어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기를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이 노파는 그 친구를 찾아가서 그 여인을 설복시켜 신앙으로 인도하려는 심산에서 자기가 방금 공소집에서 보았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노파는 자기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예식에 참석하였는데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이 가슴에 넘쳤다고 장황하게 떠벌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여인은 미쳐 날뛰면서 자기 남편에게 이것을 모두 고자질하였습니다. 이 남자는 공소집에 다니는 여교우들의 남편들을 모두 밤중에 불러다 놓고 방금 들은 비밀을 폭로하였습니다. 그 공소집에 다니는 여교우들은 남편과 부모들 몰래, 또는 가족들이 싫어하는데도 비밀히 하느님을 공경하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자기 아내들의 비밀을 알게 된 남편들은 몹시 흥분하여 날뛰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웃 읍내에서이사와서 살던 그 귀양살이 여인의 가족을 즉시 추방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집안만이 다 신자였으므로 자기 집을 공소집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초대받았던 그 공소집에서 성사 집행을 끝내고 읍내에서 막 벗어난 참이었고 저를 배웅했던 그 집의 젊은 주인이 아직 귀가하지도 못한 때였습니다. 그 청년이 막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돌연 읍내가 떠들석하게 소란한 한 무리의 군중이 공소집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러고서 이 불쌍한 가족의 살림살이를 모두 약탈하거나 파괴하고 공소집마저 때려부수고, 그 집 식구들을 읍내에서 쫓아냈습니다.

앞으로 이곳의 신자들이 어떻게 선교사를 다시 모시고 공소를 꾸밀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온 식구가 다 신자인 집은 이 공소집 한 집뿐이고, 읍내에서 쫓겨난 그 집 외에는 신자들의 집회 장소를 마련할 수 있는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머지 여인들은 전부 남편과 부모 몰래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들뿐이어서 앞으로 공소로 쓰일 만한 집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여인들은 읍내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저 불쌍한 여인들을 인자하신 눈으로 굽어보시고 그들의 착한 뜻을 굽어보소서.

가장 가까운 교우촌에서 사흘길을 걸어 또 다른 교우촌에 왔습니다. 그 마을에는 극도로 가난한 신자들 다섯 가정이 사는데, 그들은 머넞 살던 고장에서 천주교를 실천할 수가 없었으므로 얼마 전부터 이곳에 이사하여 정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작은 촌락은 험준한 산 속에있는데 이름을 만산(아마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만산리)이라고 합니다마는 가히 조선의 알프스 산맥이라고 말해야 적절할 만큼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제가 찾아가서 성사를 집전해주어야 할 곳이 그곳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110리 떨어진 곳에도 가련한 몇 가족이 사는 작은 교우촌이 있습니다. 그 가족들은 금방 이사를 와서 아직 거처할 만한 움막 하나도 짓지 못하였고, 따라서 공소집을 마련한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자 가족들은 모두가 성사를 받기 위해 만산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 마을에 교우가 20명가량이 있었는데 신자들이 두 배로 나뉘어 만산으로 왔습니다. 한 패가 먼저 만산에 가서 성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다른 패는 그들의 조그마한 움막과 살림살이를 지키기 위해 집에 머물렀습니다.

두 번재 오는 신자들은 도합 6명이었는데, 그 중에 남자가 2명이고, 16세의 처녀가 한 명이며, 열세 살과 열한 살의 소녀가 2명이고, 끝으로 아홉 살의 남자 어린이 한 명이었습니다. 이 연약한 무리가 단지 하루 사이에 110리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꼭두새벽에 집을 떠나 반 이상을 지나서 어떤 촌락을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그 마을의 장정 20여 명이 지팡이와 몽둥이를 갖고 나타나 어린 처녀와 소녀들을 겁탈하려 덤벼들었습니다.

저들은 처녀들을 빼앗으려 하고 이 편에서는 대항하려 옥신각신하는데 홀연히 그 마을에서 점잖은 노인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 노인이 이고삐 풀린 망나니들의 파렴치한 행패를 준엄하게 꾸짖고 우리의 불행한 포로들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이 용감한 신자들은 비록 피로와 허기와 불의의 공격의 충격으로 아주 지쳤지만 불량배들로부터 구출된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면서 다시 걷기 시작하여 저녁나절에야 아주 의기 양양하게 공소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마을의 신자들과 제가 얼마나한 기쁨과 연민의 정으로 그들을 맞이하였으며, 얼마나 서둘러서 다 함께 하느님께 가장 깊은 감사를 드렸겠는지 신부님께서 상상해보십시오.

저는 또 다른 마을에 갔는데, 외교인들 마을에 단지 서너 명의 신자들이 숨어 지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저녁때 그 마을에 들어갔더니 그곳의 외교인들은 선교사가 온 줄로 의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숨어 있는 집 주위를 다음날까지 온종일 엄중히 감시하였고 저를 체포하기 위해 그 집에 침입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다행하게도 우리 예비 신자 중 한 사람이 저들과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가 백방으로 그들의 잘못된 계획을 막으려고 노력하였고 그들의 계획에 크나큰 위험이 내포되어 있음을 경고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친구들에게 "자네들이 이렇게 섣불리 남의 집을 습격하였다가 만에 하나라도 예상이 빗나가서 선교사 신부를 잡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 무모한 짓 때문에 자네들만 관가에 끌려가 극형까지도 받게 된다." 하고 만류하였습니다.

저들은 이 경고를 듣고 겁이 나서 감히 그 집에 침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저들은 제가 그 집 밖으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마을에서 떠나는 저를 붙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에 어두움을 이용하여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불쌍한 신자들은 거의 2년 동안 이나 성사를 못 받고 안타깝게 선교사를 기다려왔습니다. 이 가련한 신자들에게 그렇게도 갈망하던 성사를 집전해주지 못한 채 저는 실망과탄식으로 우는 신자들을 버려두고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다지도 심술 사나운 불량배들의 소동 때문에 이렇게 굶주린 불쌍한 사람들을 만족시켜줄 수 없고, 또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들을 그러한 곤경에서 구해낼 방법이 전혀 없는 저 자신의 무능한 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나 비통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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