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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최양업신부의 일곱번째 편지 (3)

저는 저의 관할 구역 교우촌을 순회하다가 바르바라가 사는 마을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전교사인 레오의 집에서 잠시 동안 쉰 다음 기운을 차려 다시 공소 순회를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르바라는 그곳에서 한 마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제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 기쁨에 넘쳐 저를 보려고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러고서는 저에게 시중을 들기 위해 레오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저를 본 후에는 성사를 받을 방법 외에는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윤리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곳은 제 관할 구역 밖이었고 따라서 저는 그 여자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그 가엾은 처녀는 주교님이 내리신 성사 금지 처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설명을 들은) 바르바라는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뜬 눈으로 새웠습니다. 바르바라는 자기의 양심을 성찰하여 (자기가 범한 죄를 적은) 쪽지를 동무들에게 보여주면서 "대관절 이 죄들을 어떻게 하면 용서받게될까?" 하고 한탄하였습니다. 또 병들어 앓고 있는 한 친구에게는 "나도 너처럼 병들어 앓기나 했으면 신부님이 나에게도 성사를 주시련만!" 하고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러고서는 바르바라는 기도와 눈물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날이 새자 바르바라는 갑자기 끙끙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날에는 산꼭대기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힘든 일을 하던 그녀가 오늘은 도저히 감당하루 수 없는 고통중에 자리에 눕게 된 것이었습니다.

(불가피한 상황이니만큼) 저는 이날 바르바라에게 고해 성사를 주고, 다음날에는 성체를 받아 모시게 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심한 고통중에서도 쉴새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정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계속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바르바라의 죽음이 임박한 줄로 여기고 병자성사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바라바라는 아직은 그리 서두를 것 없다고 대답하며 자기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다음 저는 전교사를 바르바라에게 보내어 병자성사를 받아야 할는지를 살펴보고 또 권유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바르바라는 다시 미루었습니다.

그날 밤에 바르바라는 곁에 둘러 있는 사람들에게 신부님을 모셔다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은 급박하지 않고 임종이 가까워오지 않았으며 틀림없이 이튿날까지 죽지 않고 견딜 것이니 아직은 신부님을 모셔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르바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군요. 이렇게 캄캄한 밤중에 그 험한 길을 걸오오시도록 하는 것은 신부님께 너무나도 번거롭게 구는 것임을 저도 잘 압니다. 신부님께 그다지도 큰 불편을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그렇지만 신부님을 꼭 뵈어야 할 급한 일이 있으니 귀찮게 여기지 마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신부님을 모셔다 주세요."

저는 곧 바르바라에게로 가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집전해주고 또 임종자를 위한 성모 청원미사를 드렸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바르바라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몸을 깨끗이 씻겨주고, 명절 옷으로 갈아입혀서, 공소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청했습니다. 바르바라는 놀랍게도 무릎을 꿇고 노자 성체를 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르바라는 그날도 하루종일 몹시 앓았으나 정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맑은 정신을 보존하게 해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하였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시어 평소보다 훨씬 더 맑은 정신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항상 기도 중에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지금 이 시각에도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특별히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아직도 충분히 감사드리지 못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고통은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건강이 회복되면 맨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바르바라는 "저는 이 병든 육체를 떨쳐버리고 하늘에 계신 천상 아버지께로 가서 제가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를 드리는 것 외에 다른 원이 없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바르바라에게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 네 영혼의 안식을 위해 미사를 드려 줄 터이니, 그 대신 너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 성모님 앞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라고 말했습니다. 바르바라는 더할 수 없이 평온하게 맑은 얼굴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르바라가 마지막 숨을 거둘 즈음에 의원들이 여러 가지 침을 놓고 뜸을 뜨려고 하니까, 바르바라는 "저는 지금 숨을 거둘 참인데 이런 치료가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를 생각하고 이런 치료를 참아 받으라고 타일렀습니다. 바르바라는 그 말을 받아서 이 고통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참아 받겠다고 복창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십자고상에만 눈을 고정시켜 똑바로 쳐다보면서 의원들이 하는 대로 내맡겼습니다. 바르바라는 전에는 침과 뜸을 맞아본 적이 없었지만 온몸을 마구 찌르는 침과 뜸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견디어 냈습니다.

바르바라는 여러 가지 구원에 유익한 말로 비애에 젖어 있는 부모를 위로하고 삼종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고서는 문 가까이 가서 잠시 동안 문지방에 팔을 짚고 있다가 몸이 땅바닥에 푹 쓰러지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때는 1850년 9월 23일 저녁 6시쯤이었습니다. 바르바라의 나이 겨우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열절한 신심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르바라는 앓기 시작한지 나흘 만에 죽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났으나 아직도 우리의 얼굴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고, 상금도 그녀를 애도하는 말들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바르바라의 죽음에서 느낀 것만큼 회한과 가책과 하느님 사랑의 감정을 충격적으로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사악이 그녀의 지력을 손상할까 봐, 또 위선이 그녀의 총명을 흐리게 할까 봐 바삐 하늘로 거둠을 받았으니 그녀의 생애는 짧은 시간에 쇠진하였으나 많은 시간을 채웠도다."

바르바라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이에게 귀여움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모든 이에게 신심과 천주교 교리의 물을 들였습니다.

이처럼 순결한 영혼들의 그토록 거룩한 원의와 숭고한 결심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성사를 금지하면서까지 동정 생활을 막아야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심성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이겠습니까!

저는 조선에 들어온 후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7월 한 달 동안만 같은 집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고 언제나 시골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습니다. 중국에서 서울까지 여행한 것을 빼고도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5천 리를 걸어다녔습니다.

저는 이처럼 긴 여행과 이 모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은 늘 좋았습니다.

제가 순방한 교우수는 3,815명인데, 그 중에서 2,401명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였고, 1,764명에게 성체를 영해주었습니다. 어른 영세자가 181명이고, 유아 영세자가 94명이며, 대세를 받은 316명에게 세례성사 보례를 집전하였습니다.

예비자로 278명을 등록시켰고, 죽어가는 외교인 아기 455명에게 임종 대세를 집전하였습니다.

신자들은 거의 모두 다 외교인들이 경작할 수 없는 험악한 산 속에서 외교인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거의 다 교리에도 밝고 천주교 법규도 열심으로 잘 지키고 삽니다.

그러나 평야 지대인 고향에서 친척들과 외교인들 사이에 섞여 사는 신자들은 대체로 교리에 무식하고 신앙 생활도 열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더 열심한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죄악과 세속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가 담배와 조를 심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산 속에서도 오래 살수는 없습니다. 신자로 사노라면 점차 외교인들한테 알려지게 되어 박해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를 믿으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극도의 비참이 즉각적으로 닥쳐올 것이기 때문에 입교를 망설히고 있습니다. 특히 여인들은 신앙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지만 입교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자기 집에서 가족과 같이 지내면 신앙의 본분을 다 실천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 집을 떠나게 되면 몸을 의지할 곳을 마련할 수가 도무지 없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는 외교인들에게 납치당할 큰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1839년 박해와 흉년이 들었을 때 젊은 여인들이 고향을 버리고 도망하여 낯선 타향에 몸을 피해 빌어먹으며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외교인들의 첩이나 종이 되고 만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이 불쌍한 여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모릅니다.

1839년의 그 가혹한 박해가 있은 후 우리 종교를 가장 미워하는 어떤 원수가 신자들을 모함하는 전허 터무니없는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글을 잔뜩 써서 조정에 냈습니다. 조정에서는 신자들에 대한 백성의 분노를 선동하고, 특히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이 글을 조정의 이름으로 발행하여 조선 전국 각 지방에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박해자들이 무서워서 그런 거짓말투성이의 중상을 감히 반박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처럼 파렴치한 모함을 폭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어떤 모순점을 조금이라도 폭로하면 그 즉시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탐색을 당하고, 신자들은 보람없이 역적으로 몰려 학살을 당할 것입니다.

(1847년에) 프랑스 군함이 고군산섬에서 파선했을 때, 그 다음해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단단히 다짐하였으나, 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조선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을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한낱 허풍쟁이들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조선 조정은 수많은 당파로 분열되어 서로 헐뜯는 싸움으로 지새 나날이 쇠약해짐으로써 전례 없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전 왕(헌종)은 과음과 방종한 여색으로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고 왕족 출신의 열여덟 살 된 새 왕(철종)이 즉위하였습니다. 새 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강화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사람입니다.

새 왕의 조모와 증조모는 신자로서 신앙 때문에 살해되었습니다. 새 왕의 부친은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천주교 때문에 학살당하였고 그의 형은 모함을 당하여 역적으로 몰려 살해되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일곱번째 편지는 조금 깁니다
그 옛날  필기도구등 모든것이  열악한  상황에서
어찌 이리 길고 상세한 편지를 스셨는지
받는 저희는 그저 놀라울뿐입니다

신부님의 편지속에 등장하는
바르바라의 생애 믿음 죽음 정말  감동적입니다
순교자록에 오르지는 않았어도
순교자와 같은 생을  살다 가신분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신부님  오늘은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님 대축일입니다
오늘 이렇게  신부님 편지 답장을 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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