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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최양업신부의 일곱번째 편지 (2)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거룩한 우리 종교를 실천할 자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사방에 궁핍투성이요 사방에 투쟁뿐입니다. 우리는 마치 지극히 큰 죄나 저지르는 듯이 항상 전전긍긍 떨고 있으며, 사람들은 공연히 우리를 미워하고 마치 우리를 흉악범들처럼 멸시합니다.

만일 누가 신앙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즉시 온 가족과 친적들과 이웃 사람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공격하고 그를 인간 중에 가장 부도덕한 자로 여겨
저주를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못살게 괴롭힙니다. 결국은 그를 멀리 쫓아내고 다시는 자기 동족들 가운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양반들은 그들 중에 누가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사람을 더욱 격렬하게 핍박합니다. 가족 중의 어떤 이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의 가문 전체가 불명예로 낙인이 찍히고, 그 집안의 모든 영광과 모든 희망이 걸려 있는 양반의 칭호를 박탈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많은 신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크나큰 악표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회가 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치욕 속에서 영광을 찾기보다는 헛된 칭호를 누리기를 더 원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품계에 오르게 되면 악표의 바위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어떤 신입 교우가 최근에 친구들의 영향력으로 5품 관직에 올랐는데, 그로서는 이 승진을 위해 손을 쓴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본인은 아무런 공로도 없고 한 번도 청하지 않았는데 순전히 친척이나 친지들의 영향력만으로 관직을 얻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직이 어떤 경로로 내려졌든지 간에, 반드시 수락해야 합니다. 만일 (임금님이 내린 관직을) 사양했다가는 철저하게 망신을 당하거나 죽음까지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신입 교우는 신앙을 잃어버릴 크나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사람은 어떤 도나 큰 도시의 관장으로 발령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관장의 직책을 받아들이면 미신적인 의식에 자주 참여하지 않고서는 그 직분을 수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만일 그 관직을 수락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의 온 가족도 극도로 큰 환난에 휘말릴 위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반집 부녀자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합니다. 여자들은 자기 집 문밖에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합니다. 여자들은 아주 가까운 친척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마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알지 못하는 낯선 남자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얼굴을 보이게 되면 큰 죄악으로 돌립니다.

과부가 되면 비록 혼인한 지 단 하루 만에 남편을 잃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든 말든 상관없이 반드시 수절을 해야 합니다. 만일 재혼하려고 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그녀의 불명예로 말미암아 온 가문도 망신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부들도 같은 예절을 지켜야 하며 별로 더 자유롭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항상 밤에 성사를 받으러 옵니다. 이렇게 여자들이 밤길을 다니는 모험을 하는 중에 얼마나 많은 비극을 당할 위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두 여인이 공소 순회하는 사제한테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길을 잘 모르는데 공교로게도 그날 밤은 칠흙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들이 집을 떠난 지 조금 후에 그만 길을 잃어버려 밤새도록 길 아닌 험한 곳을 해맸습니다. 이렇게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동안에 폭포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몸이 흠뻑 젖어 춥고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걸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두 여인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언 몸을 서로 껴안음으로써 체온을 간신히 유지하였습니다.

그 두 여인은 새벽녘이 되자 간신히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 집에서 불과 10리밖에 안 되는 곳에서 이런 고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라도 성사를 받을 수 있기만 하면 그래도 다행으로 여깁니다.

외교인 부모나 남편의 슬하에 있는 여교우들은 대개가 성사를 받으러 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사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애만 태웁니다. 어느 때가 되어야 저렇게도 천상 음식에 굶주린 영혼들을 실컷 포식시킬 수 있겠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사제의 얼굴을 보는 것이 큰 은총입니다. 더 자주 그러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이틀이나 사흘 길을 걷는 것쯤은 오히려 가깝게 여깁니다. 우리는 신자들이 사제를 보기 위해서나 미사 성제에 참여하려고 떼를 지어 한꺼번에 급히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상 매우 엄격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령을 위반하는 신자들에게 아무리 벌을 내려도 신자들은 이 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막무가내로 순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교우촌에 도착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남녀노소의 구별없이 모두 새 옷을 갈아입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리고 사제가 그들의 인사를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그들은 조금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합니다. 그들은 공소회장들을 연방 들여보내어 어서 인사를 올리고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교우촌을 떠날 때에는 우리가 여행할 옷차림으로 갈아입을 때부터 공소집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고 탄식소리로 진동합니다.

어떤 이들은 저를 못 떠나게 붙들려는 듯이 옷소매를 붙잡고, 어떤 이들은 제 옷깃에 그들의 애정의 징표를 길이길이 남기려는 듯이 제 옷자락을 눈물로 적십니다.

그들은 저를 따라 나서서 제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좀더 오랫동안 제 뒷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야산 등성이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한번은 한 공소에서 다른 공소로 가야 했습니다. 제가 지나가기로 예정되었던 길 근처에 사는 신자들이 와서 자기들 마을에 잠시 들려달라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간청에 감동하여 소원을 들어우마고 약속했습니다.

그들 마을에 도착하여보니 그 근방에 사는 신자들이 모두 다 모여서 더할 수 없이 기뻐하느 것이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15리나  떨어진 곳에서 왔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그곳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기 집을 비워두고 아내와 열 살쯤되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 길도 없는 험한 산을 넘어서 저를 만나러 왔던 것입니다.

오! 만일 또 한 사람의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나 베르나르도 성인이 여기 나타나신다면 저렇게도 빈궁한 이들한테서 얼마나 큰 애정으로 환영받을 것이겠습니까!

제 마음을 극도로 아프게 하는 문제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신자들 중에 불타는 열성을 가진 많은 처녀들이 하느님을 더욱 순수하고 더욱 열렬하게 섬기고 싶어서 평생토록 동정을 지킬 작정을 하는 사례가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법률과 풍속은 이 천사적인 정결의 덕행을 위하여 변호나 보호를 해주는 피난처가 전혀 되지 못합니다.

조선 백성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지 아니하는) 동정 생활을 불효로 매도합니다. 모든 이가 정결을 지키는 삶을, 순전히 기만적인 위선에 불과한 것으로 야유합니다.

신자들을 반역도당으로 여겨 누구든지 마음대로 핍박할 수 있고, 가장 천한 백성까지도 천주교 신자들을 마구 박해합니다.

신심 깊은 열심한 여인이라도 결혼하지 아니하고 남편이 없으면 외교인들에게 납치되어 갈 위험이 있고, 따라서 그들은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정 생활을 찬양하는 설교자인 우리 사제들이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권유하거나 강제로 명령하는 자가 되어야할 지경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을 더 잘 설명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바르바라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오빠가 8명이 있는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오빠는 다 죽고 오빠 둘만 남았습니다. 바르바라는 일곱 살에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동정을 지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루는 올케가 옷 한 벌을 지으면서 바르바라에게 말했습니다. "이 옷을 아가씨 옷입니다. 아가씨 혼인 날에 입으실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바르바라는 즉시 집 안의 가장 으슥한 곳으로 피해 가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달래면서 앞으로 너를 절대로 시집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다음에야 간신히 바르바라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열한 살 되던 해 어느날 자기 방 벽에 글 몇 줄을 서놓고 나서 책 2권과 쌀 얼마를 싸가지고 몰래 빠져나가 같은 나이 또래의 소녀 한 명과 함께 밤중에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갔습니다. 아침이 되어 부모들이 깨어나 보니 바르바라가 보이지 않자 찾던 중에 벽에 바르바라가 직접 손으로 써붙인 쪽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랑하올 부모님, 저를 당신들의 자식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동정 성모 마리아의 딸로 생각하십시오. 이 세상의 삶은 짧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허망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는 자를 영원히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저를 찾지 마십시오. 제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집 사람들이 사방으로 찾아다니다가 사흘 만에 어느 굴 속에서 바르바라를 발견하였는데 그곳은 거의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험준한 곳이요, 사나운 짐승들이나 출몰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겨우 열 살 지난 어린 바르바라는 그 굴속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며 자기 동무를 가르치기도 하고 끝까지 마음이 변하지 말자고 권면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굴에서 나와 풀뿌리를 캐어 식량 대신으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바르바라는 그 황량한 곳에서 더할 수 없는 만족한 즐거움을 한껏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행복이 뜻밖에 오빠가 나타남으로 해서 한꺼번에 무너졌습니다. 오빠가 오는 것을 보고 호랑이를 본 것보다 더 무서워하였습니다. 바르바라는 자기가 갈망하는 낙원에 그대로 남아 있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오빠는 동생을 타이르고 달래고 엄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르바라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작은 몸뚱이의 온 힘을 기울여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오빠의 힘에 져서 억지로 아버지의 집으로 끌려왔습니다.

집으로 끌려오니 어머니가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어떻게 그리 어리석은 짓을 한단 말이냐? 너는 마귀한테 놀림을 당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너 같은 어리애가 호랑이도 무섭지 않고, 굶어 죽는 것도 겁이 안 난단 말이냐?" 하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니까 바르바라는 "어머니, 걱정 마셔요.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의탁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셔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때부터 바르바라는 규칙적으로 1주일에 두 번씩 금식재를 지키고, 고기와 생선 같은 것들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사순절 동안에는 날마다 하루에 한 끼만 약간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기도하는 정신이 결코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나 들일을 할 때나 항상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일상 기도문이 짧지 아니한데, 바르바라는 그것을 모두 암송하였습니다.

또한 교리문답책과 신자 교리책 그리고 성녀 바르바라, 성베드로와 성인전 및 조선의 여러 순교자들의 행적과 그 밖에도 조선 사람들이 고상하고 신심 깊게 언문으로 쓴 다른 작은 신심서들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바르바라가 성을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더워 죽겠다. 아이고, 추워 죽겠다. 웬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부나. 웬, 비가 이렇게 쏟아지나!" 하는 소리와 비슷한 다른 말은 매우 자연스러운 감탄사지만, 이런 말이 바르바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로서는 바르바라에게 종교 일이거나 세속 일이거나 무엇을 시키려고 명령하거나 권고하거나 지시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모의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큼 모든 일을 잘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바르바라의 과도한 열성과 지나친 육체 노동을 억제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르바라는 "시간은 짧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활동해야 합니다. 이 육체는 머지않아 구더기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육신을 아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 힘껏 일해야 합니다." 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도 신심수업이나 고신극기를 변함없이 실천했습니다. 사흘거리로 학질을 앓을 때에도 결코 자리에 누워 있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그렇게 육신을 학대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꾸중을 하면 바르바라는 "우리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느님께 의탁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바르바라가 그렇게 늘 고신극기하고 힘든 일로 몸을 학대하면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지 모든 사람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르바라는 자기 동료들 중에서 가장 건강하고 용모가 아름다웠습니다.

바르가바가 열 네 살 났을 때,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고해사제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고해 사제께 동정을 지키려는 결심을 말씀드렸습니다. 고해 사제는 그러한 신분에 따르는 위험을 설명해주면서 그러한 계획을 만류하며 결심을 바꾸어 결혼을 하라고 명령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해에 바르바라는 다시 같은 고해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 생각에 변함이 없고 자기 뜻을 계속 지키겠다고 그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동정의 위태로움을 다시 설명하고 동정을 지킬 결심을 바꾸어야 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사를 받고 싶으면 동정을 지킬 결심을 바꾸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성사를 받지 말아라.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바르바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신부님이 내세운 조건을 충실히 지키지 못하고 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해 사제가 제시한 선택을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서야 자기가 잘못 알아들은 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슬피 통곡하였는데 아무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바르바라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어떤 외교인한테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이 외교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썼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하는 수 없이 폭력을 써서 바르바라를 강제로 납치해 가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바르바라의 부모와 오빠들은 엉뚱하게도 갖은 비방과 행패로 수모를 당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부모와 오빠들은 바르바라의 결심을 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네가 결혼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발 이웃 신자 청년과 결혼하기를 동의하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허수고였습니다. 바르바라의 결심은 한결같이 확고부동하고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히려 바르바라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겁이 많음을 비난하였습니다. "만일 오빠들이 저 외교인들의 핍박에서 저를 보호해주실 수 없거나 보호해줄 마음이 없다면 저를 혼자 내버려두세요. 저 혼자 어디든지 갈 테니까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고 말하였습니다.

어느날 외교인들이 납치하려고 쳐들어오자 바르바라는 산 속으로 달아나 수풀 속에 숨었습니다. 납치하러 온 자들이 바르바라를 찾아내지 못하자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분풀이로 행패를 톡톡히 부리고 갔습니다.

욕설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오빠가 바르바라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 오빠는 밤새껏 큰 소리로 바르바라를 불렀습니다. 바르바라는 오빠의 목소리인줄 잘 알았지만, 오빠가 배반할까 봐 못 미더워서 숨은 데서 감히 응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오빠가 다시 바르바라를 부르면서 찾아 나섰습니다.바르바라가 숨은 곳에서 나와서 오빠를 위로했습니다.

바르바라가 혹시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지나 않았을가 하여 밤새도록 걱정하였던 오빠는 바르바라가 눈앞에 나타나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이슬에 흠뻑 젖은 바르바라가 오빠의 인도로 근심에 잠겨 있는 어머니 앞에 왔습니다. 바르바라는 밝은 낮으로 명랑하게 "어머니, 왜 근심하십니까?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서 보호하시어 모든 것이 다 잘 되어나갈 거예요. 저는 아무 탈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바르바라는 그러 후에도 한 번 더 산 속으로 도망가서 위험을 모면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바르바라는 모든 것을 버리고 부모와 오빠들과 함께 다른 고장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핍박을 당한 후 바르바라는 훨씬 더 무서운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그의 항구한 결심은 더욱 굳어질 뿐이었습니다.

세 차례나 고해소에 들어갔다가 성사를 거절당하고 네 번째 고해소에 들어갔으나 또 그냥 쫓겨 나왔습니다.

주교님께서 바르바라를 여러 차례나 부르셨습니다. 타이르기도 하시고 권고도 하시고 위협도 하셨으나 바르바라가 듣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바르바라와 그의 부모들에게 성사를 받지 못하도록 성사 금지의 처벌을 내렸습니다.

이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라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날이 더욱 열렬하고 더욱 철저하여져서 어떤 때는 자기의 가혹한 시련이 야속하여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고, 자기의 가련한 신세가 서글퍼 흐느껴 울기도 하면서 날마다 고신극기를 배가하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혼자서 집을 나가 호랑이를 만날 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호젓한 개울가고 가서 기도로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찬미 예수님 !!
신부님의  일곱번째   편지  두번째입니다
계속 게으름을 부리다가  이제야  답장 올립니다
사실 12월에 조금  바빠서 오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기다림과 설레임의 대림시기가
지나고  기쁨과 즐거움의 성탄입니다

하늘에  기쁨  땅에 평화가
여기 저희 모두에게 풍요롭게 내리기를
하늘에서 좋으신 우리주님께  빌어주세요

올 한해동안의  여정에
거룩한 성령께서 함께 하여주시고
순교성인들과  수많은 순교자들
무명순교자들께서 저희와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저희를  비추어주세요

주님은 모든것 위에 찬미 찬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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