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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허협 바오로

2018.08.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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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이 가득 찬 통을 가리키며

“네가 참으로 뉘우친다면 여기 사발이 있으니 저 통에 있는 것을 떠 마셔라”

하고 명령했다. 잘못을 크게 뉘우친 허 바오로는 서슴지 않고

그것을 한 사발 푹 떠서 단숨에 마시고 또 두 번째 사발을 

 

 

성령님 성부와 성자로뷰터 나신분 저희를 가르치시어

지극히 높으신분의 뜻을 따라 살게하소서 !

주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 허협 바오로를 본 받게 하소서 !

성 허협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9.61.jpg

 

성인 민(閔)극가 스테파노 회장이 교수형(絞首刑)으로 순교하던 날, 포청(捕廳)의 옥에서는 군인을 지냈던 허협 바오로가 주님의 자비로 참회를 한 후 순교함에 이르게 되었다. 성인 바오로는 1796년(正祖20)경에 태어났는데, 그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한 문헌이 없기때문에 고향이나 어렸을 때의 행적, 입교동기와 신앙생활의 면모가 어떠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의 집안 전체가 열성적으로 천주교를 신봉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성장한 후 서울 훈련도감(訓練都監)의 군인으로 있던 바오로는 언제나 열심히 교리의 본분을 실천한 교우였다. 

 

1839년(憲宗5) 기해교난(己亥敎難)의 박해가 한창이던 8월경에 체포되어 포청으로 압송된 그는 누구보다도 심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아마도 그가 군인의 직책에 종사하였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포장(捕將)은 그를 배교시키기 위하여 주뢰형(周牢刑)을 가하도록 하고 꼬챙이로 찌르며 치도곤(治盜棍)을 70대나 때리도록 하였지만, 그의 신앙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여 언제나 일평생 천주교 신앙을 버릴수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렇게 가혹한 형벌이 몇주일이나 계속되자 용감했던 바오로의 마음도 일시적으로 약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하루는 다른때와 마찬가지로 형벌을 당하던 중에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하겠다는 말을 입밖에 내고 말았다. 

 

포장은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졌음을 기뻐하며 즉시 그를 석방하여 주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은 배교한 그의 마음을 감싸주었으니, 바오로는 석방되자마자 자신이 범한 과실을 뉘우치고는 다시 포청으로 달려가 배교한 일을 공공연하게 철회하였다. 포장 앞으로 끌려간 그는『나는 배교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죄를 지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뉘우칩니다. 입으로는 일시적인 형벌을 못 이겨서 배교하였지만 마음에 있는 신앙심은 버리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 신앙심을 간직하고 있읍니다. 이제 잘못을 통회하고 새로운 형벌을 당할 작정으로 왔읍니다』라고 명백하고 용감하게 말하였다. 

 

화가 난 포장은 바오로를 다시 옥에 가두라고 명령하였다. 옥졸(獄卒)들은 석방되었던 그가 다시 옥으로 끌려온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해할수 없는 그의 신앙심을 명확하게 알아 보려고 하였다. 이에 옥졸들은 그를 괴롭히며『말로 배교한 것을 취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실제적으로 네가 뉘우친다는 표시를 우리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대소변이 가득한 통을 가리키며, 『네가 참으로 뉘우친다면 여기 사발이 있으니 그것으로 저통에 있는 것을 퍼서 마시도록 하여라』고 하면서 비열한 짓으로 그를 놀리려고 하였다. 바울로가 서슴치 않고 그것을 한사발 듬뿍 떠서 단숨에 마셔버리고 또 두번째로 떠 마시려고 하자, 이제는 옥졸들이 놀라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그만 둬라 그만둬』하고 그를 말리기에 이르렀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십자가를 내어 놓으면서『네가 천주교를 정말로 배반하기 싫거든 이 십자가 앞에 엎드려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십자가 앞에 꿇어 앉고 이마를 땅에 조아리며, 얼마전에 입으로 배반하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숭배하면서 다시 한번 그분을 위하여 순교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바오로의 마음은 용기로 가득 차서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의 갈등을 느끼지않고 

옥에서 받는 여러가지의 고통을 참아 내었다. 

 

여러 교우들과 함께 그는 계속적으로 신문과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으며, 치도곤도 130대 이상을 맞아야만 하였다. 치도곤은 죄인을 땅에 엎어놓고 참나무 형구(刑具)로 다리를 치는 형벌이었다. 이를 몇 대만 때려도 살이 터져 피가 솟고, 얼마 안있어 뼈가 드러나게 되는것이다. 

 

이렇듯 무서운 형벌을 당하면서도 마음을 굽히지 않던 바오로도 마침내는 육체적으로 이것을 이기지 못하여 포청의 옥에서 순교하게 되었으니, 때는 1840년 1월 30일(陰 1839년 12월 26일)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가톨릭신문, 1984년 11월 11일, 김옥희 수녀(오륜대순교자 기념관장)]

 

* 현재 성인의 이름은 허임으로 알려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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