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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화경 안드레아

2018.07.30 13:40

기도방지기 조회 수:176

박해자들의 모략에 속아 고난을 겪으면서도 

깊은 믿음으로 신앙을 지킨 순교성인이다.

 

 

성령님 성자의 성심안에 사시는분  저희를 가르치시어

당신을 알게 하시고 올바르게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저희를 부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 정화경 안드레아를 본받게 하소서 !

성 정화경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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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경(안드레아)은 박해자들의 모략에 속아 고난을 겪으면서도 깊은 믿음으로 신앙을 지킨 순교성인이다.

 

성인은 1807년 충청도 정산 고을에 사는 부유한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인은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배운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언제나 교리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성장한 후에는 외교인 친구들이 천주교 신앙 실천을 방해하자, 스스로 고향을 떠나 수원 양간(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으로 이주했다.

 

성인은 이곳에서 자기 집을 공소로 활용하고, 선교사와 신자들을 불러 모았다. 회장으로서 신자들에게 권면하는 일도 하고, 서울을 왕래하면서 교회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성인은 순박하고 양순했지만, 고지식하고 머리가 둔한 단점이 있었다. 성인은 그 단점 때문에 배교자에게 속아 은신 중인 앵베르 주교의 거처를 알리고 만다.

 

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김여상이라는 배교자는 “천주교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때가 왔다”면서 “주교님이나 신부님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조정이 분명히 천주교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며 성인을 속였다. 또 “정하상(바오로)이 주교님께 드리는 편지를 가져왔다”면서 주교의 거처를 알려달라고 꾀었다.

 

당시 성인은 자신의 매부인 손경서(안드레아)와 앵베르 주교를 자신의 농장 근처에 은신시켰다. 성인은 배교자의 속임에 넘어가 앵베르 주교의 위치를 알렸고, 결국 주교가 체포되기에 이렀다.

 

이후에도 배교자들과 포졸들은 순박한 성인을 이용했다. 성인은 “종교의 자유가 선포될 것”이라는 포졸들의 말에 속아 몇몇 교우의 집을 일러주기도 했다. 포졸들은 또 성인이 알고 있는 성직자들의 거처를 알아내려고 했다.

 

뒤늦게 박해자들의 모략을 알게 된 성인은 포졸들 몰래 선교사들을 찾아가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전했다. 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순교할 것을 결심했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만류로 자수하지는 못하고, 숨어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성인은 1839년 다시 배교자 김여상을 만났 다. 김여상은 성인을 다시 속이고자 갖가지 거짓을 꾸몄지만, 성인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오직 천주교 신앙만을 말했다. 결국 더 이상 속일 수 없음을 깨달은 김여상은 성인을 포졸들에게 넘겼다.

 

성인은 온갖 고문을 당했지만 한결같이 신앙을 이야기하다, 5개월 후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때가 1840년 1월 23일로 성인의 나이 33세였다.

 

 

성인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요당리성지

 

 요당리성지(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길 155)는 정화경 성인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주해 살면서 회장으로서 활동하던 곳이다. 성지에는 성인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 문의 031-353-9611 요당리성지, www.yodangshri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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