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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8. 현계흠 바오로 (1763~1801년)

  ‘사수’ 혹은 ‘계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현계흠(玄啓欽) 바오로1)는 한양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많은 역관을 배출했으나, 그는 역관의 길을 택하지 않고 약국을 운영하며 살았다. 1846년의 순교자 성 현석문(가롤로)은 그의 아들이며, 1839년의 순교자 성 현경련(베네딕타)은 그의 딸이다.

  바오로는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살다가 1791년의 신해박해로 체포된 후 석방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뒤, 바오로는 동료 신자들과 함께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하였다. 또 손경윤(제르바시오), 김이우(바르나바), 정인혁(타대오) 등과 함께 자주 신앙 집회를 가졌고, 신입 교우들을 인도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주문모 신부가 박해로 피신을 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집을 피신처로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집은 ‘6회’의 하나로 선정되어 있었다. 6회란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明道會)의 하부 조직이요 비밀 집회소였다.2)

  1797년 9월, 바오로는 아우가 살고 있는 경상도 남쪽의 동래 지방에 간 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마침 그 지역에 나타난 영국 배를 보게 되었는데, 상경한 뒤 황사영(알렉시오)을 만나게 되자 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체포되기 시작하였을 때, 현계흠 바오로는 기회를 틈타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온 일가 친척들이 시달림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4월경에 숨어 있던 곳에서 스스로 나와 포도청에 자수하였다. 이후 그는 포도청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교회에 해가 되는 일은 조금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3)

  바오로는 10월 초까지 포도청의 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황사영의 문초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게 되자, 상급 재판소인 의금부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으며, 1801년 12월 10일(음력 11월 5일)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 그의 나이 39세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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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계흠의 세례명은 바오로(茀祿)’라고 한 최필제의 진술을 따랐다("사학징의" 권1, p. 74, 최필제).
2) "사학징의" 권1, p. 74, 최필제 ; "추안급국안", 1801년 10월 9일, p. 731, 황사영.
3)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 180.
4) "순조실록" 권3, 순조 원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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