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명서 베드로
2019.08.04 11:07
수십 번을 죽는다 해도 천주교를 따를 것이오.
우리의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치명하면 곧장 천국에 들어가 진복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 행복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하며 기뻐하였다
영광이 성부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
성령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저희를 가르치시어
하느님께 흠숭과 영광이 되고 또한 영혼의 구원이 되며
성모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그리하여 하느님의 쓸모 있는 종으로서 죽게 하소서 아멘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저희가 성 이명서 베드로를 본 받게 하소서 !
성 이명서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 이명서ㆍ베드로는 1820년 충청도에서 구교우집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신자였으므로 박해가
없는 이곳 저곳으로 자연히 옮겨 다니다가 전주 구이지방 고수대에 이사하여 살았는데 다시 전주 성지동
교우촌으로 옮겨 신자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두었으며 그의 성격은 온화하고
어진 성품으로 모범적인 가정생활과 열심한 신앙생활로 신자들의 존경과 애호를 받았다.
후에 그는 가슴앓이로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체포되기 얼마전에 성지동 교우촌 신자들이 다가올 박해를 피할 방도를 의논하고 있을때
이 베드로는『사세가 그렇게 다급하게 되었다면 빨리 피하여야지요. 나는 이 병때문에 피하지 못
할 형편이니 하느님의 안배에 의지 할 따름입니다. 필요하시다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면 내 이 고질병이 영원히 낫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용감하게 순교의 뜻을 밝혔다.
그런차 예상대로 큰 박해가 일어나 1866년 12월 5일 마침내 포졸들이 조베드로(화서)를 체포하고 갑자기
이 베드로의 집을 덮쳤을 때 그는 잠깐 혼미하여 자신이 신자임을 부인했으나 옆에 있던 조베드로의 간곡한
타이름과 꾸지람으로 해서 즉시 정신을 되찾아 가다듬고 용기를 발휘하여『내 아까는 무서워서 그랬지만
사실 나는 천주교 신자올시다』라고 말을 하였다. 이 말은 듣자 포졸들은 그의 온집을 수색하며 책들과 돈은
어디 두었느냐고 캐물었다. 이 베드로가 책은 가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은 귀로 들어 배웠다고 말하자 포졸들은 참말인가 보려고 주의기도와 성모송을 외어 보게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깐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애착이 생겨서 자기가 환자이기도 하거니와 처자들을 생각하여 생명만은 부지해 달라고 포졸들에게 애원하였다.
그랬더니 늙은 포졸 하나가 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동정심이 생겨 그를 놓아주면서 다를 포졸들에게 들키지 않게 밤을 이용해 도망가라고 말해 주었다.
이 베드로는 그이 말만을 믿고 집에 그냥 머물었다가 다음날 아침 다른 포졸들이 다시 도착할 무렵 큰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서 산으로 피하였다. 이를 본 포졸들이 몸이 쇠약하다는 그의 말을 신용치 않게 되었고 그를 쫓아가 체포하여 다시 그의 집으로 끌고 와서 그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가르친 괴수가 누구냐고 문초하였다. 이에 이 베드로는 자기에게 이 진리를 가르쳐준 선생이라고 한다면 자기 부친밖에 없으며 책은 한권도 갖고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포졸들은 그의 애원을 뿌리치고 끌고 나아가 조베드로와 조요셉이 있는 구진퍼리
주막으로 데리고갔다. 그들이 전주에로 압송되어 그 감사에게 문초받을때 이 베드로는『천주학을 하느냐』고
묻는 감사에게 그렇다고 확답하며『내 수십번 죽는다해도 천주교를 따를것이오』라고 말하면서 배교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다른 교우들을 고발하라고 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주리형 등 여러가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가슴앓이 환자인 줄 알면서도 감사는 죄수의 손발과 머리를 묶어 고정시켜 놓고 등 허리를 난타했다. 매를 맞을 때마다 그의 손발은 뒤틀려 관절이 모조리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베드로는 경탄할 정도로 용감게 이
혹독한 고문을 잘 참아 내었다. 그때 함께 갇힌 교우들이 감옥살이로 인해 몸들이 쇠약해지고 거기다 여러번에 걸쳐 잔인한 고문까지 당했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잘 견디어 내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기도를 드릴 뿐아니라 기어이 끝끝내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함께 처형되는 날 전주 숲정이 먼 길을 끌려 가면서도 모두가 한결같이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기뻐하자 이 베드로는『우리들의 소원이
이렇게 빨리 성취되라고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그대로 오늘 우리 모두는 치명을 마치면
곧장 천국에 들어가는 진복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 행복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희열에 넘쳐
말하였다. 죽음에 임박하여 두려움이 없이 하는 이러한 그의 말은 당시 주위에 있던 외교인들까지도 놀라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외교인들은 한마디만 하면 살아날텐데도 거절하는 이 교우들의 확고 부동한 신앙을
받아들일리 없었다. 정해진 전주 숲정이 처형장소에 이르러 사형에 관한 모든 절차가 끝난후 46세된 이
베드로는 첫번째 칼에 그의 생명줄이 땅에 떨어져서 숨을 거두었으니 때는 1866년 12월 13일이었다.
이 베드로는 병중에 있으면서도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였고 배교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혹독한 고문과
문초에 도그는 확고부동했으며 끝까지 형장에서 참수하여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그의 인간적인 용덕은
길이 후손들의 귀감이될 것이다.
[가톨릭신문, 1985년 7월 21일, 김옥희 수녀(한국순교자복자회, 오륜대순교자기념관장)]
전주 숲정이
순교의 땅 전주 지역에는 전동 성당, 풍남문, 치명자산(일명 중바위), 서천교, 초록바위, 여산 순교성지 등
곳곳에 순교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숲정이’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도 하고,
군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어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시민들은 중바위(僧岩山)라고 부르는 산머리 양지바른 자리에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낮이나 밤이나’
기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6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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