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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떼제의 역사

2012.11.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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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떼제의 역사

떼제 공동체의 창립자 로제 형제는 그리스도인들의 분열과 인류의 갈등을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면서 이 공동체를 시작했다. 떼제는 오늘날 유럽은 물론 다른 여러 대륙으로부터 매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인류 안에서 평화와 화해 그리고 신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기도하고 준비하는 장소가 되었다.


기원


공동체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물어 보면 로제 형제는 흔히 자신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
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과부였던 그의 할머니는 세 아들을 전장에 내보낸 채 북부 프랑스에
살고 있었다.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피난을 가지 않고 집에 남아 도망병들과
노인들, 어린이와 임산부들을 맞아 그들을 보살폈다. 그이는 모두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최후의 순간까지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어느 누구도 자신이 겪었던 것과 같은 아픔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열정이 할머니의 삶을 움직였다. 그는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유럽에서
서로를 죽이고 있으며 새로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서로
화해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뼈대있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 안에서부터 지체없이 화해를 실천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에
가곤 하였다.

당대의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자신의 신앙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가톨릭 신앙과 화해하는 것. 할머니의 이 두 가지 열망은 젊은 로제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1940년, 2차 대전이 다시 유럽을 강타하고 있을 때 로제의 나이 스물 다섯이었다. 오래 전부터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열정에 불타 온 로제는 화해를 위해 봉헌하는 수도 공동체를 창설할
계획을 품고 전쟁과 고통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나라 프랑스로 들어간다. 그가 태어난 스위스는
그의 눈에 너무나 고요하게 비쳤던 것이다. 후에 그는 이런 글을 남긴다. "신앙인이 하느님의
절대적인 소명을 살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이 가치를 고통받는 인간상황과 결부시키는 것이
요청된다."

자신이 정착한 집을 찾다가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마을 떼제에 도착한 로제는 나이 많은 부인
한 사람을 만난다. 그의 계획을 들은 이 부인은 "여기 머무르게, 젊은이. 우린 몹시 외롭다네."
하고 청했다. 그것은 로제에게 한 가난한 노인의 말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로 들렸다.

떼제는 그 당시 프랑스를 둘로 가르는 경계선에서 2킬로 밖에 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로제 형제는 독일 점령지를 탈출한 정치 망명자들, 특히 유대인들을 그의 집에 숨겨 주면서
1942년까지 떼제에 머문다. 그는 혼자 조그만 기도실에서 하루 세 번 기도를 바쳤다. 그 기도는
구상 중에 있던 미래의 공동체가 바치게 될 기도의 전형이었다. 나찌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여러 번 가택수색을 벌이자 로제는 일단 1942년 말에서 1944년 말까지 프랑스를 떠난다.


일치의 비유로서의 공동체


1944년 로제 형제는 그 사이에 만난 세 명의 형제들을 동반하고 떼제로 돌아왔다. 그 뒤
1949년 7명의 형제들이 독신생활, 수도원장 직무의 인정, 물질적 영신적 재산의 공유 등 세
가지 서약으로 종신 수도허원을 발한다. 1952년 로제 형제는 "떼제의 규칙"을 작성한다.

첫 세대의 형제들이 개신교 출신이라 할지라도 이 공동체의 뿌리는 종교개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전통적인 수도가족 안에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다. 떼제는 저 유명한 끌뤼니
수도원에서 10킬로 떨어져 있고 또 다른 옛 수도원 씨또에서도 멀지 않다. 나중에 로제 형제는
이 지리적 조건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떼제는 수도생활의 나무 위에 접목된 순과 같다.
떼제가 끌뤼니와 씨또 사이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할 여지없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편에 인간적인 요소와 절도와 지속성을 모두 갖춘 끌뤼니가 있다. 끌뤼니는 자신들 사이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력의 장소로 부각된다.
또 다른 쪽에서는 씨또가 자리잡고 있다. 씨또는 베르나르도 성인이 특별한 긴박감을 느끼며
불타는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복음의 절대적 가치에 비추어 추호의 타협도 허락지 않으면서
쇄신을 감행했던 수도원이다. 그 둘의 뒤를 이어 우리는 쇄신의 절박성과 오랜 전통의
지속성을 함께 연결시키고자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공동체는 조금씩 커졌다. 1969년 이래 가톨릭 신자도 공동체에 입회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떼제 공동체는 가톨릭과 여러 개신교 배경의 20개국 출신 90명의
형제들로 이루어진다. 떼제 공동체는 로제 형제가 "일치의 비유"라 일컫는 대로 분열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라진 민족들 사이에 화해의 표징이 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화해가 떼제의 핵심적 성소라 할지라도,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민족들 사이에 신뢰를, 지사에 평화의 누룩이
되도록 돕는 데에 더 큰 뜻이 있다.

떼제 공동체는 자신을 위해서 어떤 희사도,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다. 형제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유산조차 상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일해서 번 것만으로 생활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한다.

형제들의 숫자가 10여명에 불과하던 1950년대부터 그들 중 몇 사람이 평화의 증인으로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있기 위하여 이 세상의 문제지역에 나가 살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그들은 뉴욕과 브라질 동북부, 케냐와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지역에서 형제들의 작은
우애공동체를 이루어 지낸다. 이 형제들은 주변 이웃들과 똑같은 삶의 조건들을 나누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힘이 되어 준다.

로제 형제 자신도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가깝게 되기 위하여, 그리고 때로는 어떤 상황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하여, 특수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곳에서 일정 기간을 보낸다. 그는
형제들이 살고 있는 뉴욕의 푸에르토리코 구역에서 얼마 동안씩 여러 차례 지냈고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의 칠레를 방문하여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 그 후, 해마다 그는 캘커타 빈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탈리아 남부의 지진이 발생했던 지역, 레바논, 하이티,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모리타니의 사헬, 인도 마드라스의 빈민가, 이디오피아 등지를 방문하였다. 또 그는
떼제 공동체가 1962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동유럽을 매년 방문한다.


떼제와 젊은이 : 인터컨티넨탈 모임


1957년 이래로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아오고 있다. 스웨덴에서
포르투칼, 스코틀랜드에서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다른 대륙으로부터
젊은이들이 매주 계속되는 떼제의 모임에 참석하여 함께 신앙의 원천을 탐구한다.

1987년부터는 다양한 얼굴과 복장을 한 아시아,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대거 참가하여 보다 큰
규모의 범대륙적(인터컨티넨탈) 모임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 유럽의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연중
멕시코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자이레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하이티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백여 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이 모임에 참석한다.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등 동유럽 젊은이들의 참가도 점점 늘어난다. 또 어린이를
동반한 수많은 가족들이 떼제를 방문하여 일 주일 동안 머물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가정들과
만난다. 몇 시간씩 떼제에 머물다 가는 수천 명의 순례객들을 계산에 넣지 않고도 이
인터컨티넨탈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줄잡아 여름엔 매주 3-6천 명, 봄과 가을엔
5백-1천 명 사이에 이른다.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등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떼제의 언덕을 메운다.

가난한 나라에서 참가하는 젊은이들의 여행비용은 유럽지역의 본당이나 공동체들이 책임진다.
그들은 떼제에서 얼마 간 지낸 후 그들을 초대한 지역 교회를 방문, 몇 주일을 보낸다. 수세기
동안 복음은 주로 유럽에서부터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오늘날 유럽에서보다 훨씬 더
활발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온 이 젊은이들은 유럽의 새로운 복음화에 한 몫을
담당하고 나아가 교회의 새 봄을 앞당기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수십 만 명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떼제를 다녀가면서
한 가지 중심테마를 부각시키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신앙과 투신을 연결시키고 내적생활과
인류의 연대를 하나로 결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떼제를 거쳐 간 많은 세대의 사람들이
여기서 기도의 맛과 보다 보편적인 교회관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권, 국제적인 양심,
외국인들에 대한 신뢰, 그리고 평화와 문화교류에 대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62년 건립된 "화해의 교회"에서 하루에 세 번 공동기도가 바쳐진다. 흔히 이 교회의 입구 쪽
벽을 트고 대형 천막을 세워 기도 장소를 확장시킨다. "떼제의 노래"는 아주 특이하다. 여러
나라 말로 된 이 노래들은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이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가사에 담겨 있어
금새 이해할 수 있고 거듭 반복해 부름으로써 그 뜻이 전 존재 안을 스며들도록 되어 있다.
저녁기도 후에는 교회 안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형제들은 개인적인 어려움과 의문을 토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준다.

매주 금요일 저녁엔 로제 형제가 러시아 정교회에서 받아들인 "십자가 주위의 기도"를 드린다.
교회 바닥에 십자 성화를 모시고, 여기에 다가가 십자가 위에 이마를 얹은 채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짓누르는 모든 짐을 하느님 앞에 벗어 놓고, 시련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고통받고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께 의탁하는 기도를 드린다. 매주 토요일 저녁기도 시간에는
부활 전야처럼 모두 촛불을 밝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는 빛의 축제가 거행된다.

13세기 창설된 국제적인 가톨릭 수도회인 성 안드레아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1966년부터 이웃
마을에 살면서 떼제를 찾는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책임을 나눠 맡고 있다.

198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떼제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을 떼제의 순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소개하였다. "떼제를 지니가는 것은 신앙의 샘터 곁을 지니가는 것과 같습니다. ……
나는 여러분에게 요한 23세의 말씀으로 이 공동체에 대한 나의 신뢰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당신들을 무척 사랑하셨던 이 교황님은 언젠가 로제 형제에게 이런 인사말을 하셨습니다.
"아! 떼제, 그 작은 봄철!""


범세계적 신뢰의 순례


1970년 로제 형제는 "젊은이들의 공의회" 구상을 발표하였는데 오랜 준비를 거쳐, 본 모임은
1974년에 이루어졌다.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던 시기에 "젊은이들의
공의회"는 그들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고 세계평화를 건설하는 데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1979년, 성숙해질 시간을 얻고 후에 다시 개최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하여 이 공의회는 잠정적으로 모임의 규모를 축소하였다. 여기서부터 차츰
새로운 형태의 "화해의 순례"가 발전했다.

실제로 1982년 로제 형제는 레바논에서 "범세계적인 신뢰의 순례"를 제창한다. 이 순례는 떼제를
중심으로 어떤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청장년들로 하여금 각자가 사는 곳에서
평화의 순례자가 되도록, 곧 도시와 마을과 본당과 지역 교회에서 어린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이웃들과 더불어 열심히 활동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순례를 영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로제 형제는 매년 한 통의 공개 서한을 쓴다. 캘커타,
마드라스, 이디오피아, 러시아 등지에서의 편지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편지들은 세계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이듬해 한 해 동안 떼제에서 묵상 자료로 쓰인다.

긴 순례길의 "정거장"처럼 떼제는 몬트리올, 뉴욕, 위싱톤, 마드리드, 더블린, 리스본, 브뤼셀
등의 대도시에서 큰 규모의 젊은이들의 모임을 개최한다. 다른 여러 지역으로부터 모여 든
참가자들은 며칠 동안 개최 도시의 본당들에서 생활하면서 지역 교회의 생활을 나누는 한편
매일 대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안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희망의 장소"를 방문한다. 때로는 바르샤바, 드레즈던, 동베를린 등 동유럽 도시들에서도 이런
모임이 여러 차례 열렸다. 떼제 공동체가 매년 말 빠리, 런던, 로마, 바르셀로나, 쾰른,
브로츠와프(폴란드) 등지에서 지역 교회들과 협조하여 개최하는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에는
4-5만 명에 이르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참가한다.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1985년과 1988년 두
차례 걸쳐 열린 아시아 모임과 유고슬라비아의 루비아나, 헝가리의 페치 시에서 각각 열린
동서 유럽의 만남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떼제는 여러 곳에서 비정기적인 순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1988년 러시아 선교 1천 주년을 기념하여 떼제는 모금된 돈으로 러시아어 신약성서 백만 부를
인쇄하여 소련으로 보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로제 형제는 간혹 세계의 분쟁과 갈등의 상황에
눈에 띄지 않게 개입한다. 그는 젊은이들의 이름으로 평화를 위한 공적인 노력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주재 소련 대사와 미국 대사를 만났고 그외 다른 여러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과도 만났다. 그는 뻬레스 떼 께야르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이 민족들 간에
신뢰를 창조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제안을 전달했다. 여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그는 여러 대륙에서 온 어린이들을 이런 만남에 대동한다. 그리하여 이
노력이 나이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래가 위협을 받고 있는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
모색되고 있음을 표명한다. 뻬레스 씨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떼제가 젊은이들과 더불어
진행하고 있는 범세계적인 신뢰의 순례는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평화의 이상에 다가서도록
도와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떼제는 현재의 어려움을 넘어서 교회가 인류 한 가운데에서 "화해의 터전, 나눔과
단순소박함의 터전"이 되는 교회의 봄철이 다가옴을 알리고 일깨우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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