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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전장훈 요한

2019.04.21 09:21

기도방지기 조회 수:87

“배교합니다.”

 

장운은 자꾸만 귀에 맴도는 그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감은 며칠을 가지 못했다. 

천주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천주님이 벌을 내릴 거라는 공포, 

주변 사람들이 던지는 질타와 연민이 섞인 시선. 

이 모든 것들이 장운을 끝없는 어둠으로 몰아내었다. 

차라리 죽음이 자신을 삼켜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아, 천주님의 자비를 믿어야 한다. 

천주님께 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랑하는 아들, 요한이란다. 

쓰러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하잖니? 다시 일어나는 거야. 

예수님도 세 번 쓰러졌지만 세 번 다 일어나셨단다.”

 

장운은 어머니의 품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 울음으로 장운은 다시 일어났다.

 

 

성령님 불혀의 표징이여 !

제 마음속에 당신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소 !

주님 저희가  성 전장운 요한을 본받게 하소서 !

성 전장운 요한 저희를 위하여 빌ㄹ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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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운 요한(Joannes)은 서울 애고개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승연이다. 착한 성격을 지닌 그는 열심한 신자인 어머니로부터 영세를 받았고, 부친을 잃은 후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짓는 한편 가죽부대와 담뱃대 만드는 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으나 신앙이 굳지 못하여 감언이설에 빠져 배교하고 풀려 나왔었다. 이때부터 전 요한은 언제나 깊은 참회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전 요한은 실망하지 않고 1845년 김대건 안드레아(Andreas) 신부가 입국하자 즉시 회개의 성사를 받고 자기의 열성과 신심을 되찾아 열심히 살았다. 이 때문에 많은 교우들도 그의 열심에 감복하여 그를 존경하였다. 그 후 전 요한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살았다.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는 그의 참된 신앙생활을 보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 권한을 주었으며, 1866년에는 최형 베드로(Petrus)와 함께 교회서적을 출판하는 직무를 맡겼다. 그래서 출판에 종사하던 임 요셉으로부터 집을 샀으나, 아직 목판의 인수인계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고 박해가 일어났다. 전 요한은 피신도 하지 않고 목판을 사수하였다. 신자들이 그에게 피신을 권유하자 그는 “내가 어디에 간다 하더라도 천주님이 부르시면 나는 체포될 것입니다. 여기서 체포되나 다른 곳에 피했다가 체포되나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교우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귀중한 물건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 목판이 교회에 매우 유익하다고 믿기에 어떠한 불행이 닥친다 하더라도 달게 받으며 여기를 지키렵니다.” 하고 말했다.

   1866년 3월 1일 포졸들이 와서 집을 지키던 그에게 “이 집은 천주교도의 집인 줄 알고 있는데 당신도 천주교도요?” “그렇게 물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틀림없는 천주교도입니다. 나를 체포해서 가겠다는 말씀이신 모양인데 기다리고 있던 참이오. 자, 앞장서십시오. 나 기꺼이 따라 가리다.” 이리하여 그는 순순히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지만 ‘예수 마리아’만을 부르면서 갖은 고통을 다 참아 받았다. 3일간의 고문과 심문이 끝나고 1866년 3월 9일 사형선고가 내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 요한의 목을 베는 희광이는 전에 신자였고 잘 아는 사이인 고성철이란 사람이었다. 그가 “내 어찌 차마 자네 목을 벨 수 있겠소?” 하며 거절하려 하자 전 요한은 “당신은 임금께 복종하고 나는 하느님께 복종하는 것뿐인데 무엇을 꺼리는 거요?”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의 칼에 목이 땅에 떨어지니, 때는 1866년 3월 10일이요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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