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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윤유오 유한숙 |♡ 한국시복 124위

양근 땅 최초의 순교자 윤유오(야고보)
▣ 동강난 글에서 찾아낸 순교 행적
우리의 순교자 중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례명이 알려져 있지 않은 탓에 아쉽게도 '하느님의 종'에서 누락된 순교자들도 많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조각난 순교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비록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순교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해 주고 있는 주옥과 같은 글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동강난 글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밀사 윤유일(바오로)의 아우요 양근(지금의 양평) 땅 최초의 순교자 윤유오(야고보)의 순교 행적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동강난 글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제 그 조각들을 모아보기로 하자. 윤유오(야고보)는 경기도 여주의 점들(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금사 2리)에서 태어나 인근에 있는 양근 한감개(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로 이주해 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형이 가르쳐 주는 신앙의 젖을 먹으며 성장하였다.

1795년의 박해로 형 윤유일(바오로)이 순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윤유오(야고보)는 결코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인근에 사는 조동섬(유스티노), 권상문(세바스티아노) 등과 만나 기도모임을 갖거나 교리를 연구하면서 서로 신심을 북돋워 주었다. 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지방 순회에 나서 양근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슴지 않고 신부를 찾아가 성사를 받았다.

이제 윤유오(야고보)는 박해자들로부터 양근 땅의 교회 우두머리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마자 그는 양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었다. 이어지는 갖가지 문초와 형벌. 그러나 윤유오(야고보)는 그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단호하게 배교를 거부하였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저는 형 바오로가 가르쳐 준 십계명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 서적을 밤낮으로 외우고 익혀왔습니다. 천주교 신앙을 버리겠다는 생각은 진실로 티끌만큼도 없습니다. 관장은 윤유오(야고보)의 마음을 돌림으로써 많은 백성들에게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윤유오(야고보)는 끝까지 진리의 가르침에서 등을 돌리지 않았고, 이를 알게 된 관장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1801년 4월 27일(음력 3월 15일), 양근 관아로부터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큰길가로 끌려 나가 동료들과 함께 휘광이의 칼날을 받아야만 했다.  

이때 윤유오(야고보)와 함께 신앙을 증거하고 천상의 영광을 얻은 교우가 한 명 있었다. 그 이름은 '유한숙'. 그러나 아쉽게도 생전의 행적과 세례명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천상의 순교록에는 분명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겠는가!  사실 그 달에만 해도 양근에서는 모두 13명의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이는 윤유오(야고보)와 유한숙 뿐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순교자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이 무명 순교자들의 용맹한 신앙심은 지역 교우들의 입과 귀를 통해 전승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교우들은 여전히 그들을 존경하고 있다.

양평의 순교사와 순교 터
▣ 휘광이의 칼날, 영광스러운 선혈
지금의 양평 지역, 즉 양근 땅에서 처음 박해가 일어난 것은 1800년 5월 무렵이다. 이때부터 다음해 초까지 양근에서는 모두 7명이 체포되었고, 그중 윤유오(야고보)와 유한숙은 1801년 3월(음력) 양근 형장에서 순교하게 된다. 또 신유박해가 계속되는 동안 서울과 양근에서 윤점혜(아가다)와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이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양근으로 끌려와 처형되었다.

한편 교회측 기록에는 1801년 3월 양근에서 순교한 신자가 모두 13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 대부분은 무명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가 있다. 또 윤유오의 삼촌 윤관주(안드레아)는 양근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던 중에 순교하였고, 1801년 5월 경에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해 잔인하였던 양근 군수 정주성에 의해 이재몽·괘몽 형제와 두 딸, 권철신의 제자 김원성, 그리고 윤점혜와 활동한 이 아가다 등이 양근에서 처형되었다. 이어 10월 초에는 양근 출신의 유명한 신자 조동섬(유스티노)의 아들 조상덕(토마스)이 옥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윤유오의 사촌누이 윤운혜(마르타) 등은 서울의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양근 출신으로 1799년 서울로 이주한 김일호의 순교 터도 서소문 밖이다.  양근 지역 중에서 특히 우리의 순교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곳은 양근 관아와 옥, 그리고 형장이다. 관아와 옥은 순교자들이 순교에 이르는 과정에서 용감하게 형벌을 이겨내면서 신앙을 증거하던 곳이요, 형장은 그들이 영광스러운 화관을 얻은 순교 터이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이러한 곳을 잊을 수 있겠는가!

양근 관아 즉 양근군의 치소(治所)는 본래 고읍면(현 옥천면)에 있었으나, 1747년(영조 12년)에 현 양평 읍내로 이전되었다. 그 위치와 규모는 지금의 양평읍내 관문거리에서부터 100m 북쪽까지로 관아 전체는 남향이었으며, 남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은 동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선 후기에 발간된 읍지에 수록된 관아의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 또 관아의 옥은 지금의 관문거리에서 보면 북쪽 방향이요 왼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옛 관아의 북쪽 정상에는 초등학교가, 옥터 서쪽 동산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러면 양근의 형장은 어디인가. 박해사를 기록한 이기경의 (벽위편)에는 양근의 처형지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신유 3월 15일. 경기 감사 이익운이 장계하기를, “……양근 관아의 문에서 서쪽으로 2리쯤 떨어진 큰길가에서 백성들을 많이 모아놓고 죄인 유한숙과 윤유오 등을 법률에 따라 참수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옛 양근의 큰길은 현재의 양근 삼거리에서 양평군청을 지나 서울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 삼거리는 예로부터 서쪽으로는 서울, 동북쪽으로는 홍천과 횡성, 남동쪽으로는 여주로 가는 길목이었고, 지금 읍내를 관통하는 도로가 여기에 연결된다. 따라서 “관아의 문에서 서쪽 2리쯤(약 700~800m)이 되는 큰길”은 양근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있는 양근 사거리와 양근교 지역(양평 군민회관 앞쪽)에서 양평 휴게소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양평군청 서쪽 200~300m 지점으로, 옛 양근 관아에서는 서쪽으로 800m 정도 내외가 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형장은 냇물이 흐르고, 모래사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택하여 선정되었다. 양근의 형장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휘광이의 칼날이 춤을 출 때마다 뿌려지는 선혈들을 냇물에 흘려보내기 쉽고, 그들의 시신을 덮을 모래사장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에게 이 곳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교자들의 신앙과 영광이 이곳의 역사와 함께 해 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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