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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현경련 베네딕따

2018.05.03 18:59

기도방지기 조회 수:136

 

자기 개인의 성화를 위해 힘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른 이의 성화를 위해서도 힘썼다.

또 냉담자들을 권면함은 물론이요,

근심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죽을 위험을 당한 비신자 어린이들에게

대세 줄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선교 신부들의 순회 시기가 되면 신자들을 자기 집에

모이도록 해서 할 수 있는 대로 성사를 받을 준비를 시키곤 하였다.
 

성령님 당신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수 없나이다 !

저희를 가르치시어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녀 현경련 베네딕따를 본받게 하소서 !

성녀 현경련 베네딕따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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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현경련 베네딕타는 샤스탕(Chastan, 鄭) 신부의 복사 현석문 카롤루스(Carolus)의 누이이고,

역관 집안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1801년에 순교한 현계흠으로 당시 매우 유명하였다.

또 그녀의 시댁 역시 유명한 교우 집안인데, 시아버지 최창현은 한국교회 설립의 주역으로서

신유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심하였으나 부친이 없어서 동생 카롤루스와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몹시 가난한 생활을 했다. 또 박해로 인하여 자주 이사를 다니지 않으면

안 되어서 어려서부터 그녀가 당해야 했던 모든 시련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7세가 되던 해에 영광스런 순교자 최창현의 아들과 혼인하였으나 3년 후에 남편을 잃었으며,

또 자녀가 없었으므로 친정어머니에게로 돌아와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불행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행복하고 조용하며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며

자기 영혼 사정을 돌볼 길을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그녀는 “천주께서는 더 쉽게 당신을 섬기고 내 영혼을 구하게 하려 하셨다”고 말하며 주님을 찬미하였다.

기도와 묵상과 독서를 정한 시간에 하였고,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 냉담하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일이

절대로 없었으며, 또 집안이 화목하여 사람들은 모두 이 집안의 생활을 감탄하였다. 

현 베네딕타는 바느질을 해서 생기는 돈을 한 푼도 제 몫으로 따로 떼어놓지 않고 집안을 위해서 내어 놓았으며, 자기 개인의 성화를 위해 힘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른 이의 성화를 위해서도 힘썼다. 또 냉담자들을 권면함은 물론이요, 근심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죽을 위험을 당한 비신자 어린이들에게 대세 줄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선교 신부들의 순회 시기가 되면 신자들을 자기 집에 모이도록 해서 할 수 있는 대로 성사를 받을 준비를 시키곤 하였다.

   이리하여 여회장이 된 그녀의 신앙생활과 활동이 곧 박해자의 눈에 띄게 되었고, 박해가 일어나자 제일 먼저 고발된 사람들 중에 들게 되었다. 얼마 동안은 숨어 지냈으나 5월에 이르러 그녀가 숨어있는 곳이 알려져 마침내 포졸들에 의해서 붙잡히게 되었다. 포장은 현 베네딕타의 동생인 현석문 카롤루스가 서양인 신부의 충복인 줄 아는 만큼,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숨은 곳을 누이를 통해 알아내려고 하였기 때문에 베네딕타는 그만큼 더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녀는 여덟 차례나 문초를 당하였고 또 선교사를 체포하는 자에게 현상금을 준다고 하였기 때문에 현상금을 탈 목적으로 포졸들은 저희들 마음대로 가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러나 베네딕타의 굳고 참을성 있는 결심으로 그들의 증오와 탐욕에서 나온 횡포는 허사가 되었고, 선교사들에 관한 정보는 한 마디도 얻어 낼 수가 없었다.

   8월 23일에 형조로 옮겨진 그녀는 또 어떻게나 혹독한 형벌을 당했던지 몸은 갈기갈기 찢겨졌고, 상처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옥중에 만연된 열병에 결려 그녀의 고통은 한층 더 심했지만 조금도 뜻을 굽힐 줄 몰랐다. 마침내 형조에서는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사형 집행일이 되었지만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지닌 채 사형 집행의 시간을 가다렸다. 오랫동안 평안하고 고요하게 잠을 자고 난 다음에 영원한 복락의 시작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형장을 향하여 잔치에 나가듯 기쁜 마음으로 나가 순교의 칼을 받았다. 이때가 1839년 12월 29일이요, 그녀의 나이는 4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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