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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송 종 례 수녀님의 글|♡ 한국시복 124위
윤운혜 루치아 (+1801)
전임 연구원 송 종 례 수녀

윤운혜, 루치아는 남편 정광수와 함께 한국의 그리스도교 역사상 처음으로 성화(聖畵)와 성물(聖物)을 제작하여 보급하는 성물판매소를 운영하였다. 그녀는 이를 통해 조선에 천주교 신앙을 전파하고 활성화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1801년 순교하였다.

윤운혜는 경기도 양근(楊根, 현 양평군 강상면)에서 양반집의 서출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천주교를 알았고 책을 통하여 더 깊이 공부하였다. 이로 보아 그녀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과는 달리 글을 읽을 줄 아는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윤운혜는 조선 초기 여성공동체의 리더였던 윤점혜 아가다의 동생이며, 윤유일 바오로의 사촌 여동생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 천주교회 신자들은 대부분 가족과 친척들에게 신앙을 전파하여 친족, 외가, 사돈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운혜가 언제 영세를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순매(바르바라)가 1795년에 오빠(정광수)와 올캐(윤운혜)로부터 천주학을 배웠다는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천주교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윤운혜는 천주교 신자인 정광수(바르나바)의 부인이었는데, 포도청의 진술에는 양가 부모끼리 주고 받는 혼인의 동의문서 없이 ‘정가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정식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천주교 신앙 때문에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바로 그 신앙 때문에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하였던 것 같다. 여하튼 이들은 그 시대에 자유결혼을 한 커플이다.

문제는 윤운혜가 천주교를 믿기 때문에 조상 제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고집한 것이다. 포도청 진술에 의하면 시어머니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미움을 받자, 윤운혜는 1799년 경 “남편의 손을 끌고 서울로 이사”를 왔단다. 이로 보아 서울로 거처를 옮긴 원의가 윤운혜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서울의 교우들이 있는 동네로 와서 교우집끼리 서로 담장을 헐어버리고 한 집과 같이 오가며 천주교리를 학습하였다고 한다. 또한 남편 정광수는 빈터에다 교우들이 모여 교리를 공부하거나 함께 전례를 거행할 수 있는 집을 지어, 그곳에서 주문모 신부와 신자들이 모여 미사와 강의를 듣기도 하였다.

윤운혜는 자기 주장과 소신이 분명했던 여성이었나 보다. 부모 허락도 받지 못한 며느리라면 더더욱 애를 써서 시집의 일에 적극 참여하여야 했을텐데, 그녀는 조상제사를 드릴 수 없다고 강하게 맞섰던 것 같다. 당시 남편 몰래 천주교를 믿는 여성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이 조상 제사문제였다. 현재는 천주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이 교의에 저촉되는 일이 아닌 것으로 공표되었지만, 19세기에 천주교회가 박해를 받은 이유 중의 하나가 조상제사금지였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조상께 드리는 사랑의 기억, 표시임에도 당시 각 나라 문화에 대한 천주교회의 오해가 빚은 비극은 컸다. 여하튼 조선시대에 살았던 윤운혜는 당시의 교회 가르침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였던 충실한 신앙인이었다.  

윤운혜 부부는 성화를 그렸다기보다 베껴 색을 칠함으로써 한국에 최초로 그리스도교 성화를 그리는 예술인이 되었다. 윤유일 바오로가 조선에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 몇 번 중국을 방문하면서 십자가와 묵주, 그리고 성화 등을 가지고 돌아와 평소에 그림 솜씨가 있었던 윤운혜와 정광수 부부에게 이런 사업을 권하였거나 혹은 성화나 성물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신들이 스스로 예수상이나 성모상을 베껴 그리고, 나무로 묵주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기 시작한 것이 그들을 성물 제조업자가 되게 하였는지 모른다. 더욱이 차츰 주문 양이 많아지면서 전문적인 상업행위로 발전하게 되었으리라 본다. 하여튼 이 부부는 성화를 보고 똑같이 그리는 미술적 감각과 성물을 만드는 손재주가 많아 성물판매소가 꽤 잘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교회서적들을 베껴서 교우들에게 팔았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작하여 판매함으로써 많은 신자들이 애용하였던 것으로 보여 신앙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윤운혜가 계집종을 시켜 장과 김치를 사다 먹던 반찬가게의 최소사에게 당시 꽤나 귀하던 솜을 선물로 보냈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궁색하지 않은 여유 있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한번은 윤운혜가 최소사를 자기 집에 초대하였는데, 최소사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자 그런 것을 외우면 죽어서 지옥으로 간다고 못하게 하였다. 대신에 십계명을 외우면 죽은 후 천당에 간다고 하면서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소사는 기억력이 없어서 배운 것을 외우지 못하자, 윤운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정신이 맑아져서 십계명을 암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를 하였다. 윤운혜는 신앙생활과 특히 기도생활을 위해 음식이나 다른 것들을 조정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고, 이를 통해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도 터득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를 통해 이미 깊은 기도생활에까지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다 조금 먹는 육식이 정신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화분 하나를 종이에 옮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윤운혜의 미술적 감각에 부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오늘같이 유화를 위한 재료가 풍부하지도 않았을텐데 성화를 그려서 다른 사람에게 신앙을 제공할 수 있었다니 부러운 일이다. 저마다 신앙을 전파하는 길은 하느님께서 주신 그 사람 고유의 달란트에 따라 다르다. 한문서적을 읽어 교리를 가르친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야기를 재미있고 구수하게 하여 선교를 하는 이들도 있고, 하느님께 충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통해서나, 이웃을 보살피는 애덕의 행위를 통해 감명을 주어 개종자를 늘린 이들도 있다.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어떤 몫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 글쓴이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영성사 박사, 가톨릭대 등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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