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타이틀1

슬라이드 타이틀2

슬라이드 타이틀3

||0||0107. 양재현 마르티노 (1827~1868년)

  1827년에 태어난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는1) 언제부터인가 경상도 동래의 북문 밖에서 살았다. 그는 동래에서 좌수(坐首)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정식(요한) 회장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후 그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68년의 박해 때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동래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치자 태연하게 그들을 맞이한 뒤 관아로 끌려갔다.

  이윽고 관장 앞으로 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마르티노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는 형벌을 달게 받았다. 또 관장이 배교를 강요하자, “절대로 천주교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다시 문초를 받고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었다.

  양재현 마르티노는 수군의 병영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배교를 거부함으로써 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옥에 들어가서는 옥졸의 꾀임에 빠져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몰래 그곳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옥졸은 마르티노가 집으로 돌아가자 관장에게 가서 ‘죄수가 몰래 도망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하였다. 이내 포졸들이 다시 마르티노의 집으로 몰려왔고, 그는 즉 체포되어 동래 관아로 압송되었다. 마르티노의 신앙심은 이때부터 다시 굳건해지게 되었다.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마르티노는 통영에 있는 수군의 병영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동래 관아로 끌려와 옥중에서 이정식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하였다.2)

  동래 관장은 마침내 사형을 결정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있는 신자들을 끌어내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로 압송하였다. 이때 마르티노는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에 칼을 받았으니, 그때가 1868년 여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2세였다.3) 순교 후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

--------------------------------------------------------------------------------
1) 마르티노가 1813년에 태어났다는 증언도 있다 : 양경순(마르티노) 증언, 이병화
  (베드로) 신부 기록, "병인군난 치명 사적", 1924. 양경순은 마르티노의 손자.
2) 위의 "병인군난 치명 사적" 참조.
3) "병인치명사적" 권 18, p. 40, 김 안토니오 회장의 증언 ; "치명일기", 정리 번호
  823, 양 마르티노 ; "일성록", 고종 무진년(1868년) 8월 4일. 순교 날짜는 ‘1868년
  6월’(음력)로, 순교 장소는 ‘경상도 통영’으로도 나타난다. 동래 관아의 처형 보고
  날짜는 ‘1868년 9월 19일’(음력 8월 4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3 <font size=3>송 종 례 수녀님의 글|♡ 한국시복 124위 [1] 기도방지기 2011.09.12 1264
172 <font size=3>118. 정광수 바르나바 ( ? ~1801) [1] 기도방지기 2011.09.12 1175
171 <font size=3>정광수 바르나바· 윤운혜 루치아 부부 [1] 기도방지기 2011.09.12 1395
170 <font size=3>117. 지황 사바 (1767~1795) [1] 기도방지기 2011.09.12 1149
169 <font size=3>116. 최인길 마티아 (1765~1795) [1] 기도방지기 2011.09.12 1086
168 <font size=3>여주성당 홈피 자료|♡ 한국시복 124위 [1] 기도방지기 2011.09.12 1219
167 <font size=3>115. 윤유일 바오로 (1760~1795) [1] 기도방지기 2011.09.11 1080
166 <font size=3>114. 권상연 야고보 (1751~1791년) [1] 기도방지기 2011.09.11 1080
165 <font size=3>113. 주문모 야고보 신부 (1752~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9.11 1088
164 <font size=3>112. 윤지충 바오로 (1759~1791년) [1] 기도방지기 2011.09.11 1018
163 <font size=3>111. 윤봉문 베드로 (1852~188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1 1019
162 <font size=3>110. 박대식 빅토리노 (1812~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084
161 <font size=3>109. 오 마르가리타 ( ? ~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109
160 <font size=3>124위 시복시성 진행상황 | 시복시성위원회 기도방지기 2011.09.10 1291
159 <font size=3>108. 박 프란치스코 (1835~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129
» <font size=3>107. 양재현 마르티노 (1827~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115
157 <font size=3>106. 이정식 요한 (1794~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059
156 <font size=3>105. 허인백 야고보(1822~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03 1063
155 <font size=3>104. 김종륜 루가(1819~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03 1028
154 <font size=3>103. 이양등 베드로 ( ? ~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03 100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