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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정순매 바르바라

2011.07.02 21:19

기도방지기 조회 수:1131

||0||0정순매 바르바라
▣ 소박데기 동정녀

‘정순매’ 순교자의 이름을 대하니, 본당 사목을 하던 때의 어느 날 나에게 자기 손자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던 자매님의 일이 생각난다. 그때 한참을 망설이다가 ‘박균호’라고 이름을 지어준 일이 있었다. ‘균호(均昊)’, ‘하늘의 뜻(=하느님의 은총)을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어주었었다.  

정순매!, 이름이 순박하고 단아하다. 누가 지었을까? 물론 부모님은 교우가 아니었지만 하느님의 섭리였을까? 그는 이름 그대로 주님의 뜻을 늘 따르며 살았던 순교자였다. 여주 가마골(현 여주군 금사면 도곡리) 태생의 정순매(바르바라)는 여주의 순교자 정광수(바르나바)의 누이동생이요, 윤운혜(루치아)의 시누이다.

정순매는 열아홉 살 되던 1795년, 오빠 부부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후 정순매(바르바라)는 매우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오빠 부부를 따라 한양으로 이주한 뒤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열일곱 살 때에 허가(許哥)와 혼인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쫓겨났고, 그 후 이처럼 한양으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과부로 행세하였다. 물론 동정을 지키기 위해 꾸며댄 말이었다.

사실 조선 사회의 습속으로는 처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사람은 나이가 차면 짝을 얻어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보아 대를 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처녀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갖가지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한 정순매에게는 어떠한 위험도 극복할 신앙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허가(허씨)의 아내’가 된 것이다.  

정순매(바르바라)는 오빠 부부를 도와 교회 서적과 성물을 신자들에게 보급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올케 윤운혜(루치아)의 언니인 윤점혜(아가타)가 회장으로 있던 동정녀 공동체의 일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공소예절을 치룰 때면 언제나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 그러다가 정순매는 1800년 주문모(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게 되었고,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착한 일을 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정순매(바르바라)는 여회장 강완숙(골롬바)의 집에서 윤점혜(아가타) 회장 등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아녀자로서는 도저히 감당 못할 혹독한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여성답지 않은 아주 뛰어난 용덕을 보여 주었다. 그는 한 사람의 교우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 신앙을 증거하였다.

박해자들은 마침내 정순매(바르바라)가 거짓으로 과부 행세를 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는 그녀를 요녀(妖女)로 지목하면서 마음을 바꾸도록 강요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혹독한 형벌로 위협하면서 끝내는 굴복하고 말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해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하나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는 “너는 아직도 첫 마음(初心)을 바꾸지 않고, 기꺼이 네 올케의 뒤를 따르려는가? 믿음을 바꾸어 살 길을 모색하라”는 서슬퍼런 최후 심문 가운데서도 이렇게 진술 하였다. “저는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한 탓에 ‘일찍 허가의 아내가 되었으나 지금은 과부가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면서 동정을 지켜왔습니다. 이처럼 모진 형벌과 문초를 당하는 것이 어찌 육신에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천주교 신앙을 너무나 좋아하여 그 마음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제 자신을 온전하게 바친 하느님께서 주시는 천상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마침내 정순매(바르바라)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았다. 동시에 고향으로 보내 처형함으로써 그곳 백성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는 명령에 따라 여주 형장으로 이송되었다. 그런 다음 1801년 7월 4일(음력 5월 24일)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녀의 나이는 25세였다. 이렇게 하여 정순매(바르바라)는 일찍이 결심한 대로 순교로써 동정을 지킬 수 있었다.

이 글을 마치려는데 정순매(바르바라) 순교자의  목소리가 내 심중을 찌른다.  
“다년간 공경하여 믿어온 천주교를 어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계속 성가가 흥얼거려진다.
“♬ 주 예수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모든 명예와 권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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