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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 "3">고통에 대한 두가지 태도

2010.11.27 21:37

기도방지기 조회 수:1897

||0||0 고통에 대한  두가지 태도

지금까지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성서 인물 두 사람을   통하여 어떤  태도로  고통을 받아 들이는 것이 가잘 이상적인지 보도록 하겠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과 요셉이 각자  자기의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야곱이  삶을 정리하는 모습과  요셉이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 아주  다르다

성조 야곱이  이집트 재상으로  있던  아들 야곱을 만났을 때  이집트 파라오가  야곱에게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묻는다
야곱이 대답하기를  "이 세상을  떠돌기  백삼십년이  됩니다  얼마 되지는 않사오나  
살아온  나날이 다  궂은일뿐이었습니다"(창세 47.9)

<살아온 나날이  다  궂은 일뿐> 이라는 야곱의 말은  우리의 말이기도 하다
사실 야곱의 생은 쉽지않은 생이었다
하나의  투쟁이 지나가면 또 다른 투쟁이 다가오는 생  집념의 생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란  말이 있듯이  야곱은 자신의 의지가 담긴
집념적 행위들을  통하여 자기생을  조각하였다

그는 장자권에 대한 집념으로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아내지만
형의 증오를 피하여 집과 고향을 떠나야 했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살아생전 다시는 못보게된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집념때문에  인색하고 고약한  장인  밑에서  돈  한푼도  못 건지고  20년을 일해야  했다  아뽁강에서 대면한 남자(하느님의 천사)와의 씨름에서  축복을  받아내려는 집념으로   그 남자를 놓지 않다가  채여서 한평생  절름발이가 된다

......


한편 그의 아들 요셉의 생은 어떤가
형들의  질투를 사서  살해당할 뻔한뒤  열일곱살이란  젊은 나이로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갔던 요셉 노예생활 10년 뒤  상전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다는 무고를 받아  강간미수죄로 감옥에 들어가 무기수로 살아야 했다  3년동안 옥살이를 한후에 풀려나게 된 요셉의 고통스러웠던 생을   요셉은 어떻게 정리할까

누구의 생이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보이는가
야곱은 유랑생활을  하였지만  요셉처럼 노예생활을  한것은 아니다
야곱은 14년간이나 돈  한푼 받지않고 일하였지만 자유인이었고   옆에는 사랑스런 여인  라헬이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자유인이 아닌 종의  신분으로  일했고  상전의 부인으로부터 성적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나아가 요셉은  언제 풀려날지도 모르는 무기수로서 감옥에서 살았다

이렇게 요셉의 생은 그의 아버지 야곱보다  더 고통스런  생이었지만  
창세기 본문을 읽어보면 요셉의 생은 봄날 순풍에 돛단배 가듯 평탄한  인생처럼  보인다 아버지보다 훨씬 더 힘겨운 생이었는데도 축복받은  생처럼 보여진다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
야곱의 집념과 요셉의 순종이 바로 그 이유이다
야곱은 집념이 컸던 만큼  하느님께 대한 항복이 늦었다

한편 요셉은  어떻한 처지에서든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리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고통보다는 축복이 부각되는 것이다

요셉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하며 산 삶이다
요셉은  한번도  생의 비극에 굴복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어떻한 시련이 닥쳐와도  늘 하느님안에 머물렀다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이  당신 선의로 자기 삶을 이끌어 주리라고 믿었다
요셉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그 중심을 두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나  무슨 행위를 할 때에  하느님이란 단어가 얼마나 자주 들어가는지 모른다

1 감옥에 함께 갇혔던 파라오의 두시종장이  꿈을 꾸고 나서 요셉에게 해몽을 청했을때
요셉은  "꿈을 푸는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창세 40.8)라고 말한다

2 파라오가 요셉에게 해몽해 달라고 하자  요셉은 파라오에게
"저에게 무슨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폐하께  복된  말씀을 일러 주실이는  하느님뿐이십니다"(창세  41,16)라고 대답한다

3 긴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된 형들에게 요셉은 자기 정체를 밝히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이곳 이집트로 보낸것입니다"(창세 45.5) 라고 말한다  또 하느님 섭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재차
"나를  이곳으로 보낸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십니다"(창세 45.8)라고 한다

4 자기가 이집트 통치자가 된 것은 파라오가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였기에 그렇게 된 것인데  형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나를 ...이집트 전국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창세 45.9)라고 말한다

5 야곱이  죽기 직전 요셉의 두 아들을 가라키면서 "얘들이 누구냐" 하고 묻자  요셉은  
얘들은    "하느님께서 이곳에서 저에게 주신 제 아들들입니다"(창세 48.8-9)라고 대답한다

요셉과 같은 신앙을 가진  이에게는 인생의 어떤 고통도 힘겹지 않다
그가 고통의 폭풍우속을 지나갈 때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면서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그를 지켜주시니  힘겨울 수가 없다
그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편안함이든  고통이든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기에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한 신앙인의 마음과 삶속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사람이 누리는  평화로움으로  알 수 있다
하느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커다란 평화속에 살며  어떻한  시련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는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2차세계대전 당시 빅토어 프랑클은 나치에게  가족도 재산도 집도 모든것을 다 빼앗겨 잃어버린 상태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위하여 계속 쓰오던 글을  불행하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빼앗겼다
절망속에서 가스실에서 죽어간 죄수가 입었던 누더기 옷에서 발견한  종이쪽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이 종이쪽지를 발견한후에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했던 말이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험한 처지에 있다해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갖는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고통스런 처지를   견디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이 혼탁한 시기에 우리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살기 쉽다
우리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우리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예수와 같이 살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게 할 수만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와 같이 살게만  된다면
또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와 같이 살지 않는다면
비록  모든 사람이 우리를 존경하고  사랑할지라도  우리삶은 무의미할 뿐이다

송봉모 신부님의 고통 그 인간적인것 중에서 117쪽-127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