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타이틀1

슬라이드 타이틀2

슬라이드 타이틀3

||0||0홍주 최초의 순교자 원시장 베드로

  ◈  입교와 신앙 생활

  원시장(베드로)은 충청도 홍주 ‘윽전리’(현 충남 당진군 합덕읍 성동리의 ‘응정리’)에 있는 부유한 양민(良民) 집안에 태어났다. ‘시장’은 그의 관명(冠名)이다.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없지만, 성격이 사납고 야성적이어서 호랑이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전한다.

  1788년 혹은 1789년 무렵, 그는 나이 55세가 넘어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내포 평야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응전리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사촌 형인 원시보(야고보)와 함께 처음으로 천주교 교리를 듣게 된 원시장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것이 바로 진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즉시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세례는 받지 못하였다.

  예비 신자가 된 순간부터 원시장은 천주교 교리를 양약(良藥)으로 생각하였고, 진작에 그 약을 먹지 못한 지난날의 헛된 세월을 한탄하였다. 그리고는 이 진리를 좀더 올바르게 깨우치고 실천하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에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집을 떠났다.
“나는 50년 이상을 무익하게 살아 왔다. 내가 돌아오면 내가 떠난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 걱정말고, 특히 나를 기다리지 마라.”

  이후로 가족과 친지들은 1년 이상이나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년이 지난 어느 날 원시장이 다시 나타나자, 그의 친척과 친구들은 그에게 달려가 무수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난 50여 년 동안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소. 그러나 지금은 수천 년 동안 목숨을 보전하게 해 주는 약을 가지고 있소. 그것을 내일 설명해 주리다.”

  과연 그 이튿날 원시장은 모든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 세상의 시초와 마지막, 만물을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존재, 원죄(原罪)와 강생(降生), 하느님의 계명, 천당과 지옥 등, 지난 1년 동안 스스로 깨우친 교리를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였다.

  “자, 이것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 누구나 영원히 사는 방법이오.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내 유언으로 알고 나처럼 천주교를 신봉하시오.”

  은총이 그의 말과 함께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그 날부터 ‘인류의 대왕이며 공동의 아버지이신 분을 섬기기 시작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모든 말보다도 원시장에게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힘을 준 것은 그의 착한 모범이었고, 그가 스스로 거두었던 승리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정복하였으며, 일상 생활에서 변하지 않는 온화함을 보여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특히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누어주고, 올바른 지식으로 비신자들을 권면하는 열성에 감탄하였다. 그는 비신자 30가구 이상을 입교시켰으며, 그의 열심은 비신자들 앞에서까지 항상 천주교의 규칙을 지킬 정도로 대단하였다.

  ◈ 신해박해로 인한 체포와 옥중 영세

  당시 홍주 일대에는 이미 천주교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관가에서도 항상 이 지역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원시장(베드로)과 사촌인 원시보(야고보)는 열심한 신자로 인근에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던 중 1791년의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홍주 목사는 지체하지 않고 포졸들을 풀었으며, 그들은 먼저 원시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때 원시보는 친구들로부터 포졸들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들의 권유에 따라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므로 윽전리에 당도한 포졸들은 사촌인 원시장을 붙잡고 ‘당신 사촌(원시보 야고보)이 어디로 갔는지 빨리 대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죽기가 무서워서 숨었소. 그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오.”
  “우리는 목사의 명령을 받고 천주교인인 그를 잡으러 왔소. 그러나 그가 여기 없으니 대신 당신을 잡아가겠소.”
  “좋소.”
  원시장(베드로)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홍주 관아로 끌려갔다. 그러자 그곳 영장(營將)이 다시 그에게 물었다.
  “당신 사촌이 어디로 갔소.”
  “난 모르오.”
  “당신 사촌이 천주교를 믿는다는데 당신도 믿소.”
  “나도 천주교를 신봉하오.”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천주를 배반하시오. 나는 사또(즉 홍주 목사)에게 그 모든 소문이 순전히 무함이었다고 보고하겠소. 그러면 당신은 곧 풀려날 것이오.”
  “나는 천주를 배반할 수 없소.”
  결국 그는 어떤 옥에 갇혔고, 오랫동안 계속 배교하라는 독촉을 받았다. 그러나 원시장(베드로)이 여전히 배교를 거절하자, 화가 난 홍주 영장은 그를 목사 앞으로 끌고 갔다. 이때 홍주 목사는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하면서 배교하도록 강요하였다.
  “네가 천주교를 따른다는 말이 정말이냐.”
  “정말입니다.”
  “천주를 배반하고 공범자들을 고발하고, 다시는 천주교를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라. 그러면 너를 즉시 놓아주도록 하겠다.”
  “천주를 배반하다니,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또 천주교인들을 밀고할 수도 없습니다.”
  “너는 공범자들을 고발하고, 네 집에 있는 책들을 신고하기도 원치 않는단 말이냐.”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이제 화가 잔뜩 나서 형리들에게 주리를 틀라고 명하고, 이어 치도곤(治盜棍) 70도를 치도록 하였다. 그러나 원시장은 모든 것을 참을성 있게 견디어내면서 하느님과 부모님께 대한 사람의 본분을 설명하고, 덧붙여 비신자들이 행하는 미신 행위의 허망함과 참된 도리에 대해 설명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옥으로 끌려갔다.

  얼마가 지난 뒤 목사와 영장은 다시 원시장을 끌고 오도록 한 다음 예전과 같이 질문하였으나,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는 다시 주리를 틀리고 이전보다도 더 혹독하게 치도곤을 맞았다. 이제 그의 살점은 너덜거리고, 두 어깨뼈는 부러졌으며, 등뼈는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났다. 이렇게 참혹한 상태로 그는 옥으로 다시 끌려갔다.

  이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원시장의 얼굴은 만족과 기쁨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옥졸과 아전과 포졸들에게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에는 한 교우가 그를 보기 위해 옥으로 찾아왔는데, 이때 원시장은 그로부터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예비 신자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 끊임없는 형벌과 신앙 고백

  사실 홍주 목사는 여러 개월이 지나면서 모든 것을 단념하였다. 누구든지 형벌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원시장(베드로)만은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 신앙을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은 형벌을 집행하는 형리들과 옥졸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관리들에게 두려움을 줄 정도였다.

  목사는 그 동안 공주에 있는 충청 감사에게 사실을 보고하였고, 1792년 말에는 감사로부터 원시장을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목사 앞에서 있은 세 번째 문초 때에는 어마어마한 형벌 도구들이 준비되었으며, 이 굳은 증거자에게 겁을 주려는 속셈에서 그 주변에 수많은 포졸들까지 세워 놓았다. 목사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말하였다.

  “네 목숨을 구해 주려는 마음에서, 그리고 네 마음을 좋은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썼다. 그러나 네가 아무 말도 듣지 아니하고 죽기를 고집스럽게 원하므로 나는 감사에게 보고를 하였다. 그랬더니 너를 쳐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배교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알라.”

  “그것은 제가 가장 열절하게 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리들은 그의 결박을 옥죄면서 무서운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문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지만, 원시장은 이를 용감하게 견디었다. 이제 그의 몸은 하도 으스러져서 수족조차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고문이 끝났을 때는 옥졸들이 그를 둘러 업고서야 겨우 감옥으로 데려갈 수 있었고, 손으로 음식을 입에 넣어 주었지만 이조차 삼키지를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홍주 목사는 인근 수령들을 불러다 그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마지막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혈육의 정에 호소해 보기로 하였다. 그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 앞으로 끌려나가 자녀들 이야기를 전해들은 원시장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자녀들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이 크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친히 저를 부르시는데, 어찌 그분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와 수령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들은 형리들을 시켜 사형수에게 관례로 주는 음식을 주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죽임으로써 이 사건을 마무리지으려고 하였다. 형리들은 전보다 더 미친 듯이 매질을 시작하였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포졸과 형리들이 기진맥진하여 서로 말하였다.

  “이놈의 죄인은 매를 맞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어떻게 끝장을 내면 좋겠소.”
  원시장은 어렴풋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매를 맞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여기에 오셔서 저를 직접 굳세게 해 주십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더 세게 매질을 하도록 하였다.
  “저놈은 틀림없이 귀신을 부리는 놈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목사는 매질로만은 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를 결박한 뒤 물을 부은 다음 추운 밤중에 내 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내 원시장의 몸은 굵은 밧줄에 묶여졌고, 온 몸에는 물이 뿌려졌다.

  밤이 되자 그가 덮어쓴 물은 얼음으로 변하여 온 몸이 얼음 투성이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만을 생각하였다.

  “나를 위하여 온 몸에 매를 맞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몸이 얼음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 다음 원시장(베드로)은 마지막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은 닭이 두 번째로 홰를 칠 무렵이었으니, 때는 임자년(1792년) 12월 17일(양력 1793년 1월 28일)로, 그의 나이 61세였다. 충청도 땅에서 탄생한 첫 번째 순교자의 모습은 바로 이러하였다. 그러나 그의 용감한 순교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충청도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어 더 많은 순교자의 피가 그 위에 물들여질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3 <font size=3>52. 이재행 안드레아 (1776~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6.26 1058
92 <font size=3>51. 이시임 안나 (1782~1816년) [1] 기도방지기 2011.06.26 1135
91 <font size=3>50. 이일언 욥 (1767~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18
90 <font size=3>이성례 마리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356
89 <font size=3>49. 이성례 마리아 (1801~1840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65
88 <font size=3>48. 이보현 프란치스코 (1773~1800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21
87 <font size=3>이도기(바오로) 순교자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43
86 <font size=3>47. 이도기 바오로 (1743~1798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26
85 <font size=3>46. 이국승 바오로 (1722~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07
84 <font size=3>45. 이경언 바오로 (1792~1827년) [1] 기도방지기 2011.06.12 1186
83 <font size=3>44. 이경도 가롤로 (1780~1802년) [1] 기도방지기 2011.06.12 1123
82 <font size=3>43. 윤지헌 프란치스코 (1764~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6.12 1211
81 <font size=3>42. 유중성 마태오 ( ?~1802년) [1] 기도방지기 2011.06.12 1162
80 <font size=3>41. 유문석 요한 (1784~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6.12 1164
» <font size=3>홍주 최초의 순교자 원시장 베드로 기도방지기 2011.06.05 1289
78 <font size=3>40. 원시장 베드로 (1732~1793년) [1] 기도방지기 2011.06.05 1163
77 <font size=3>39. 원시보 야고보 (1730~1799년) [1] 기도방지기 2011.06.05 1152
76 <font size=3>원경도 요한 .... [1] 기도방지기 2011.06.05 1109
75 <font size=3>38. 원경도 요한 (1774~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6.05 1055
74 <font size=3>37. 안군심 리카르도 (1774~1835년) [1] 기도방지기 2011.06.05 108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