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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미혼모를 가둔 어느 법관의 이야기(퍼온 글)

2012.12.03 10:06

노갑식 조회 수:1450 추천:1

||0||0아빠의 마음, 법관의 양심

2012년 11월 중순 오전에 전날 소년보호재판을 받았던 수진이가 아버지와 함께 판사실로 찾아왔다. 1996년생인 수진이는 출산을 한 달 남짓 남겨 둔 만삭의 임산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찾아온 수진이에게 전날 법정에서 맛있는 것 사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법원 근처의 고기 집으로 갔다.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수진이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수진이에게 보호처분을 내린 소년부 판사 세 사람이 어색하게 마주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수진이는 중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2012년 3월에 가출하여 친구들 3명과 함께 상습적으로 절도를 하다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채 계속 절도를 일삼다 체포되어 2012년 7월에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었다.
구금은 소년의 심신이나 장래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소년법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으면 소년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기각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수진이와 그 친구들의 비행 횟수와 내용이 중대하고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조치가 불가피하였다. 그래서 수진이와 그 친구들에 대해 구속영장은 기각하되 기존의 소년보호사건을 근거로 그들 모두를 소년분류심사원에 임시위탁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된 수진이는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임신 17주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자 수진이는 모르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게 되었다며, 낙태수술을 해야 하니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수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수진이의 아버지는 법원에 탄원서를 올려 선처를 호소했고, 소년분류심사원에서도 전화로 가급적 빨리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수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수진이가 써낸 사건 경위서 때문이었다. 경위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억지로 지어낸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2012년 3월 23일 쯤 엄마 집에서 돈 20만 원 들어있는 통장을 들고 대구 서부정류장으로 갔다. 문민국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만났다 친구 김동경, 장소영도 만났다. 친구들과 엄마돈 20만 원을 같이 섰다. 그래서 각자 서로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구걸을 했다.
시간은 밤 12시 전이고 서부정류장에서 한 아저씨 나이는 30~40대 정도의 아저씨에게 돈을 2,000원 달라고 하니 주겠다고 하고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안먹었습니다 하니 밥 사준다고 해서 배가 고파서 따라갔습니다.
아저씨랑 서부정류장 옆 관문시장에 가서 된장찌개를 먹고 나오니 시장 안 불이 거의 다 꺼져있고 무언가 느낌이 이상해서 도망을 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내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고 불이 꺼져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가서 길에서 저를 눕혀 바지를 벗겨 위로 올라와서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가 옷을 입더니 도망을 가고 저는 아저씨를 잡으려고 했는데 제가 옷을 벗고 있어 잡지 못하였습니다.
아저씨를 잡아서 구속시키고 싶습니다.
하루빨리 나가서 애를 지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만일 수진이의 말이 진실이라면 수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만 하였다. 그래서 급히 국선보조인을 선정하면서 수진이가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것이라는 주장이 진실인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국선보조인은 수진이를 여러 차례 만나 설득한 끝에 마침내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은 성폭행 때문이 아니라 공범으로 함께 재판을 받게 된 남자 소년과의 성관계 때문이었다.
실은 국선보조인도 최종적으로 수진이한테서 진실을 듣기 전까지는 판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소년분류심사원 직원들은 수진이가 성폭행 당하였다는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성폭행 당시의 상황을 수진이한테서 몇 번씩이나 들었는데 그때마다 수진이가 일관되게 이야기를 해서 수진이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수진이에 대한 처분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수진이의 인생과 그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임신한 점을 감안하여 수진이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면 수진이가 이미 낙태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태아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진이의 경우는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낙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불법낙태를 묵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법관의 양심상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을 구하고자 수진이에게 2년간 소년원에 보내는 ‘10호처분’을 내린다면 미성년자인 수진이로 하여금 원하지도 않고 축복받지도 못한 아이를 출산하게 하는 것이 되고, 이는 그의 남은 인생을 너무 가혹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만일 내가 수진이의 아빠라면 딸을 미혼모로 만드는 처분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빠의 마음과 법관의 양심이 계속 부딪쳤다.

2012년 8월, 수진이와 공범인 그 친구들에 대하여 심리를 열었다. 먼저 공범들에 대해서는 소년원에 6개월간 보내는 ‘9호처분’ 또는 2년간 보내는 ‘10호처분’을 내렸다. 임신한 수진이는 자신이 사실대로 말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고심 끝에 수진이에 대하여 ‘10호처분’을 내렸다. 법관의 양심과 더불이 이미 잉태되어진 천하보다 소중한 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0호처분이 내려지자 수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에는 원망이 빛이 감돌았다. 안타까움과 연민이 솟구쳤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법정 밖으로 나간 수진이는 “사실 대로 말했는데 왜 소년원에 보내느냐?”고 거칠게 항의하며 판사를 향해 대놓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처분에 불복한 수진이는 항고(抗告)까지 했으나 기각되었다.

이후 수진이를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의 평온이 깨졌다. ‘한 아이의 생명은 구했다고는 하지만 한창 피어날 어린 아이의 인생은 망쳐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수진이의 남동생 수완이가 비행을 저질러 소년보호재판을 받으러 왔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터라 함께 출석한 수진의 아버지에게 수진이의 근황을 물어보니 차츰 안정을 찾아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    

그러던 2012년 11월 초순, 수진이가 위탁되어 있던 안양소년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진이의 출산일이 가까웠으니 출산준비를 위해 보호처분을 변경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자 다시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수진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법정에서 원망하며 울지나 않을지 우려도 되었다.
며칠 뒤 법정에서 수진이를 만났다. 배는 더욱 불러 있었고, 막달 임산부답게 살도 많이 붙어있었다. 수진이는 지난 번 재판 때와는 달리 표정이 다소 밝아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바로 처분을 하여 집으로 돌려보내기보다는 수진이에게 좀 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기존의 10호처분은 취소하되 새로운 처분은 하지 않은 채 1주일간 부산 소년분류심사원에 임시위탁하는 처분을 내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수진이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렸다. 임신해서 몸도 무거운 수진이가 추위에 떠는 게 안 돼 보여 이미 법정에 들어와 있던 다른 소년과 그 가족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순서를 바꾸어 수진이에 대한 재판을 먼저 진행하였다.
“수진아 판사님 많이 원망스럽지?”
“처음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거짓말 하지 마라. 밖에서 내 욕하고 다니는 거 다 알아”
이 말에 수진이가 찔린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너 판사님 마음 이해하니? 너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아직도 잠을 설친다.”
수진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국선보조인이 수진이가 소년분류심사원에 있는 동안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쓴 편지를 제출하였다. 그래서 수진이에게 직접 읽어보라고 하였다.
“아기야… 안녕… 나는 너의 엄마이자… 흑!”
수진이는 편지를 받아들고 낭독하기 시작하였으나 첫 줄을 채 읽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TO.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아기에게…
아기야… 안녕…
나는 너의 엄마이자 아직 나이가 어려서 너에게 도움을 못주는 엄마이기도해..
너에게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널 가졌을 때 또는 지금 마음과 생각들을 편지로 적어보려고 해.
난… 솔직하게 널 가졌을 때… 낙태에 관한 안 좋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지금 너의 엄마라는 사람은 능력도 없고 도움도 못주는 무능력한 사람이여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몸에 있는 너를 창피해하고 거짓말도 하고 기형아일까봐 낙태하려는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너랑 같이 생활하면서 생각의 변화도 생기고 시간이 점점 갈수록 너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너를 아껴주지 않고 사랑대신 상처 되는 말만해서 미안한 생각도 들고…
너도 내 몸에서 살고 있는 귀한 하나의 생명인데…
나는 그걸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고 몸조심해야할 시기에 술, 담배, 약 등으로 널 괴롭히고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리고 니가 내 몸속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바뀌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정말 너에게 고맙고 미안해…
그리고 이제부터는 태어날 때까지 내 몸속에서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커서 씩씩하게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길 바래…
그리고 아가야~ 사랑하고 얼른 보고 싶다~

수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물었다.
“아기는 어떻게 할 거니?”
“입양할 거예요.”
대충 짐작을 했던 대답이지만, 뭐라 대꾸할 수가 없어 미리 준비해 온 배냇저고리를 주면서 말했다.
“이거 배냇저고리라는 거다. 애기 낳아서 처음 입히는 옷이야. 지금까지의 원망하는 마음일랑 다 풀고 좋은 마음으로 태교해야 한다. 판사님을 원망하고 싶으면 해도 돼. 하지만 그 마음으로 태교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돼. 아기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태교를 잘 해야 한다. 태교에 문제가 있어 아이에게 잘못된 일이라도 생긴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아기를 입양하신 분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니. 또 아기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너도 마음이 편치 않을 거야. 재판을 하면서 그런 경우를 몇 번 봤어. 남은 동안만이라도 태교를 잘 해서 입양되어 갈 아기와 그 아기를 입양하는 분들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해. 알겠지? 그리고 시간 나면 판사님께 들러라. 맛있는 것 사줄 테니.”
수진이에 대해 2년간의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보호자에게 위탁하는 처분을 내렸다. 수진이는 배냇저고리가 뭔지 잘 모른 탓인지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건네는 종이가방을 받아들고는 웃으면서 법정 밖을 나갔다. 미안한 마음 풀길 없어 작은 선물을 마련했는데 기쁘게 받아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겨우 열일곱 살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야 하는 수진이와, 그런 딸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애처러워 상추에 고기를 싸 연신 딸의 입에 넣어주는 아버지, 그들에게 가혹할 수도 있는 판결을 내린 판사, 왠지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수진이는 식사를 하는 동안 몇 번이나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 냈다.
대화를 해 나가는 동안 처음의 어색하고 무겁던 분위기는 조금씩 풀려나갔다. 수진이도 그 아버지도 나를 크게 원망하는 것 같지 않았다. 편지에 쓴 것처럼 뱃속의 아기가 커 갈수록 생명의 소중함과 엄마로서의 마음가짐이 생긴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판사실로 돌아와 ‘로뎀의 집’에 연락해서 수진이를 출산을 할 때까지 도와 줄 것을 부탁드렸다. 로뎀의 집에서는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판사실까지 수진이를 데리러왔다.
인사를 하고 판사실을 나가는 수진이를 보며 밝아진 모습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로 얼마 후면 아기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수진이의 재판은 아마도 법관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재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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