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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방이라도 쓰세요!(베들레헴의 여관)

2012.12.28 17:59

노갑식 조회 수:1643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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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필자 부부가 거창성당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로 봉사하던 때의 이야기다. 주일학교 성탄예술제였던가? 학년별로 연극, 노래, 율동, 합주 등의 분야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짜 예술제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우리 6학년은 최고학년이라는 이유로 연극을 담당하기로 했다. 필자가 팔자에도 없는 연극연출은 물론 연극대본 작성까지 도맡아야 했는데 대본을 써 놓고 보니 내용이 싱겁기 그지없었다. 주일학교 교장을 맡고 있던 헬레나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필자와 마주칠 때마다 걱정이 섞이거나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냈고, 결국 연극에 필요한 의상 준비가 어렵다는 핑계로 연극 대신 인형극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인형극에 쓸 인형은 장갑처럼 손에 끼고 손가락으로 입을 움직여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한 제품이었다. 학생 3명이 탁자 뒤에 앉아서 탁자 위 배경 그림 앞에 인형을 낀 손을 올려 미리 녹음한 대사에 따라 인형을 움직여 연기하는 방식의 인형극이었다. 대본은 “칠득이와 스크루지”라는 제목의 기존 작품을 사용하기로 하고, 유치부와 초등부 선생님 7명이 성우로 캐스팅되어 대사를 녹음하였다.

  선생님 중 남자는 필자뿐이었기 때문에 스크루지 영감역은 필자, 마귀역은 아내, 최연장자 헬레나 선생님은 천사역, 유치부 선생님은 바보 칠득이역, 나머지 선생님들은 골고루 단역을 맡았다. 조신하게 보이기만 했던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예상외로 배역을 잘 소화하였다. 선생님들의 말투와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녹음 중에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보가 터뜨리는 바람에 여러 번 녹음을 되풀이해야 했다.

칠득이 역을 맡은 유치부 선생님의 바보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고, 아내의 냉소적이고 코믹한 마귀연기와 헬레나 선생님의 전혀 천사답지 않은 천사연기는 배꼽을 잡게 했다. 헬레나 선생님의 천사연기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 분위기와 흡사해 너무 우스웠는데 필자 부부는 그 선생님에게 귀신천사라는 애칭을 붙여 드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성탄예술제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의 교사 모임에서 거창성당 주임신부였던 아나니아 신부님께서 들려주신 어느 성당 초등부 성탄연극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성모 마리아님이 성 요셉과 함께 만삭의 몸으로 몹시도 추운 날 밤에 베들레헴에서 묵을 여관을 찾았으나 빈방이 없어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다는 것이 연극의 줄거리였다.  여관 주인 배역을 맡은 아이의 역할은 여관방 안에 앉아 있다가 성 요셉 일행이 여관주인을 부르면 문을 열고 “빈방이 없소! 다른 데로 가보시오”하고 문을 쾅 닫아버리면 되는 단역이었다.

  막이 오르고 성 요셉 일행이 여관 주인에게 방을 청하는 장면까지는 연극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방안의 여관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성 요셉 역을 맡은 아이가 여관주인을 한 번 더 불렀으나 방안에서는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일부 아이들은 “야! 빈방이 없다고 해야지”하고 나지막이 알려 주기도 하였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문이 스르륵 열렸는데 여관주인 배역을 맡은 아이가 울먹이면서 “제 방이라도 쓰세요!” 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요셉 일행역을 맡았던 아이들은 할 말을 잃었고, 찬물을 끼얹은 듯 술렁대던 객석도 잠잠해져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누군가의 박수를 시작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추운 날에 만삭의 성모 마리아님을 차마 내치지 못하고 자기 방이라도 내 주려고 했던,  따뜻한 심성을 가진 그 아이를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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