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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사랑 수녀님? 사랑하고 존경해요"

2012.12.06 12:32

andy 조회 수:1831 추천:1

||0||0"나의 첫사랑 수녀님? 사랑하고 존경해요"

<박삼중 스님 증언> 스님의 첫사랑, 수녀님 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연상의 수녀님이 내 첫사랑입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수녀의 이야기에 삼중스님의 얼굴은 발개졌다. 입가는 해맑은 미소를 띠었다. ‘최소피아’, 성녀였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가 한국에 첫 방문을 하였을 때 남긴 말이 있다. “한국에도 성녀가 있다.” 대구 시립희망원에서 봉사하는 소피아 수녀를 두고 한 말이었다. “노벨평화상은 소피아 수녀가 받아야하는데 내가 받았다.”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대구 시립희망원에는 장애인과 알코올 중독증을 한 몸에 지닌 걸인들만을 수용하는 보호소다. 대구 시립희망원의 책임자로 있는 소피아 수녀의 얼굴은 온통 게딱지로 얼룩덜룩했다.

한국의 성녀 ‘소피아 수녀’

삼중스님은 1982년도 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테레사 수녀에 대한 내용이었다. 테레사 수녀가 성녀로 지칭한 소피아 수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 시절 삼중 스님은 대구에서 활동을 했다. 초파일에 가두모금으로 돈을 만들었다. 그 돈을 들고 대구 시립희망원을 찾았다.

“테레사 수녀님이 말한 소피아 수녀님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수녀님을 만나서 한 가지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 찾아 간 것입니다. 수녀님은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수녀님이 어린 시절에 지녔던 장래희망을 듣고는 참 흐뭇했습니다. 그녀의 소원은 비구니였다고 합니다. 집안내력이 대대로 불교집안이라면서 형제들은 불자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비구니가 되려는 꿈을 안고, 고등학교 때부터 봉사생활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비구니가 되는 것은 좋았지만 한 가지가 부족했다고 합니다. 비구니는 산 중에서 수행만 할 뿐 봉사를 할 수 없다는 게 큰 장애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수녀의 삶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친숙한 마음이 더욱 들더군요.”

소피아 수녀는 ‘우리는 깡통이다. 스님들은 수행으로 정신세계가 충만하다. 참 부럽다. 수녀는 수행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아서 영혼을 구제하지 못한다.’며 순수한 고백을 했다. 이런 겸손한 그녀의 태도에 삼중스님은 감복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은 자연스레 삼중스님의 가슴에 와 닿았다.

수녀얼굴엔 손톱자국 투성

“수녀님의 얼굴에는 손톱자국 투성이었어요. 더욱이 아물지 않은 게딱지 상처들이 여러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시립희망원에는 철조망 안에 있는 중증환자들이 많습니다. 미쳐 날뛰는 환자의 방어막으로 철조망을 쳐 두었다고 합니다. 그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으려면, 누군가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자신이었습니다.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는 사람들이 어디 얼굴만 할퀴었겠습니까? 아물 날 없는 손톱의 상처들이 제 눈에는 신선하게 보였습니다.”

마테 테레사 수녀가 한국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테레사 수녀는 호화스러운 호텔을 거부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택했다. 테레사 수녀가 찾은 곳은 대구 시립희망원이었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역시 그녀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훌륭한 성녀였다.


▲ 삼중스님과 최소피아 수녀.

“참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수녀님이시죠.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대구 시립희망원에서 여장을 푼 테레사 수녀님이야 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한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호텔을 거부하고 초라한 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소피아 수녀님의 하루의 일과를 지켜보았겠지요. 그녀는 분명 소피아 수녀에게 반했을 겁니다. 소피아 수녀님도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해서 두 분은 이미 안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장 힘들고 험한 일을 직접 실천하는 모습들이 기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겠죠. 기자들의 눈에 비쳐진 모습 그대로 신문에 실었습니다.”

참 성직자 모습에 반해

삼중스님도 역시 소피아 수녀의 일과를 지켜보았다. ‘진정 이게 성직자의 본분이다. 봉사하는 사람의 참모습이다.’ 가슴으로 반했다. 소피아 수녀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남자들의 눈에는 시집을 못갈 정도로 억세게 보였다. 힘도 장사였다. 삼중스님보다 7~8년 연상으로 그 당시 40대 후반 쯤으로 봉사활동을 가장 활동적으로 했던 시절이었다.

“소피아 수녀의 얼굴에서 내뿜는 평온한 빛에 눈이 부셨습니다. 수녀님을 만나러 몇 차례 방문을 더 했습니다. 왜 찾았겠어요? 그저 수녀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천사의 모습을 보는 듯 신선하고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고백으로 제 가슴은 마구 뛰었습니다. 나라면 저런 고백을 절대로 입 밖에 꺼내지 않을 텐데, 그녀는 자신을 낮추면서 진실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소피아 수녀는 고백했다.

“가끔씩 천주교 신자들이 위문 방문을 옵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나를 보면서 한 정신질환자가 벌떡 일어나면서 손가락질하더군요. ‘야! 흰 보자기 쓰고 왔다 갔다 하는 년아! 네가 뭐 길래 천사처럼 흰 보자기를 썼냐? 천사가 뭔지 네가 이야기해봐라?’ 이 환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어정쩡하게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그랬더니 ’‘왜? 이년아! 대답을 안 해? 넌 언제나 말을 잘하지 않느냐? 네가 천사처럼 했잖아. 내가 말해줄까?’하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면서 조용히 들었어요. ‘천사는 네가 아니고 여기 과자랑 사탕 가져온 사람들이 천사야.’하는 소리에 눈물을 쏟아졌어요. 그 소리가 정말 하느님의 말씀처럼 들렸어요. 그들의 눈에 비쳐진 내 자신을 보게 되었어요. 정말 몸만 왔다 갔다 하는 내 본모습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몸만 움직이는 심부름꾼


삼중스님은 이런 수녀의 고백에 다시 한 번 감복했다. 이렇듯 삼중스님과 소피아 수녀와의 만남이 여러 번 마주치게 된 기자들은 이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연합뉴스를 비롯하여 모든 주요 뉴스에 보도되었다. 신문지상에 소피아 수녀와 함께 발그레한 삼중스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삼중스님은 신문에 실린 사진만 쳐다보아도 기분이 흐뭇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낸 신문사 부장이 나를 찾아 왔습니다. 소피아 수녀와 인터뷰를 신청했더니 절대로 응해주지 않는다는 사정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취재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와는 워낙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장은 카메라 기자까지 함께 데려 왔더군요. 수녀님이 싫어하는데 내가 어찌 도울 수 있느냐며 거절을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은 꾀를 짜냈습니다. 함께 소피아 수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내가 마치 취재기자처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함께 한 부장과 카메라 기자는 청년회 신도들이라면서 옆에서 듣고만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녀님을 가운데 앉히고 신도들끼리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수녀님에 대한 기사는 신문에 크게 실렸습니다.”

신문사 부장은 소피아 수녀에 대한 기사를 아주 좋게 썼다. 수녀에 대한 칭찬은 끝도 없이 써내려갔다. 삼중스님은 흐뭇했다. 분명히 소피아 수녀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신이 났다. 자신이 소피아 수녀를 위해 한 건 해주었다는 생각에 삼중스님은 대구 시립희망원을 찾았다. 발걸음도 가볍게 들뜬 기분으로 소피아 수녀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샛노래진 얼굴로 소피아 수녀는 삼중스님 앞에 섰다. 싸움을 걸었다.

수녀와의 싸움에서 ko패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일주일동안 밥을 먹지 않았지요. 삼중스님이 나타나기만 하면 싸우려고 기다렸습니다.”

소피아 수녀의 일격에 삼중스님은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요?’하는 표정을 짓는 삼중스님에게 소피아 수녀는 다시 한 번 연타를 날렸다.

“왜 속였나요? 기자라면 기자라고 말해야 되지 않나요? 온 세상 사람들이 전화를 합니다. 스님이 무슨 뜻에서 그리 속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싫습니다. 실망했습니다.”는 외마디 고함에 한동안 말을 잊었던 삼중스님은 기죽어서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좋은 일이니 나도 거든 것뿐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좋은 일이 많으니 좋지 않습니까?”

“스님이 생각할 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좋지 않아요. 나는 좋은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저 몸만 왔다 갔다 했을 뿐인데, 앞으로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수녀님, 왜 이러십니까? 좋게 생각하세요.”

“진짜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들어줘서 나는 그저 심부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삼중스님이 크게 실수를 했어요. 만약 내가 좋은 일을 했다면 내가 하나님에게 직접 보고해야 됩니다. 그리 세상 사람들에게 까발리게 만든 것은 스님의 잘못입니다.”

삼중스님은 대답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좋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실수였다며 나무라는 수녀에게 더 이상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소피아 수녀의 진실한 마음이 보였다. 주변의 봉사자들과 다른 수녀들을 어찌 얼굴을 들고 만날 수 있겠느냐는 소피아 수녀는 머리를 숙였다. 삼중스님은 그제야 소피아 수녀의 참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녀에게 왕따당한 스님

“참 봉사하는 마음을 보니 그만 감동에 쌓였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마치 성모마리아를 만난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와 소피아 수녀님의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수녀님은 나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소피아 수녀님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쓴 책의 한 단락에 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책 한 권을 수녀님께 드렸나 봅니다. 그 사람이야 수녀님에 대한 좋은 이야기이니 당연히 수녀님이 좋아하리라 생각했겠죠. 그런데 수녀님의 일침이 이때도 일격을 가했습니다. ‘중도 아닌데 웬 책을 써!’하는 말과 동시에 책을 내던져버렸다고 합니다. 구상 선생과 관련하여 소피아 수녀님의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녀의 고집은 워낙 강해서 구상 선생도 꺾지 못했습니다.”

동아일보에서는 인촌(김성수) 봉사상을 주었다. 구상 선생은 그 봉사상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다. 구상 선생은 사회봉사 부문상에 삼중스님을 추천하려고 했다. 상금도 5천만 원으로 다른 봉사상의 상금 중에서는 가장 많았다.

“스님, 금년에는 사회봉사 부문에 스님이 상을 받으시지요?”

“내가 뭘 했다고요? 전 자격이 없습니다. 더욱이 저와 선생님과의 친한 사이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리하면 안 되지요? 뒷말이 많을 겝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 상을 줄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수녀님 한 분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누구인가요? 제가 아는 수녀님인지요?”

“테레사 수녀님도 성녀라고 했던 대구 시립희망원에서 봉사하는 최소피아 수녀님입니다.”

“그럼 한번 수배를 해 보시죠. 스님이 나서서 말씀해주십시오.”

수녀는 ‘스님! 철 좀 드시죠!’

그래서 삼중스님은 소피아 수녀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넣었다. 삼중이라는 이름을 듣더니 소피아 수녀의 목소리는 갑자기 냉랭해 졌다. 구상 선생이 이차저차해서 인촌봉사상에 소피아 수녀를 추천했다는 삼중스님의 설명을 대번에 잘랐다. ‘스님! 철 좀 드시죠!’하면서 전화를 딸각 끊어버렸다.

“이런 쌀쌀맞은 대접에도 제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소피아 수녀에 대한 존경심은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한적십자사와는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봉사하는 사람들끼리는 오랜만에 만나도 항상 믿음으로 서로를 좋아합니다. 한 13년 전 일입니다. 적십자사의 사회봉사 국장으로 지낸 분과는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한때는 수녀를 꿈꿨던 분입니다. 봉사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분입니다. 그 시절 대한적십자사에서 봉사상을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소피아 수녀님을 또 추천했습니다. 구박을 받으면서도 이번에도 자청해서 또 전화를 드렸죠. 전화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소피아 수녀는 대구 시립희망원을 떠났다. 성주 골짜기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겨울로 막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 사람들이 어쩌면 얼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애간장에 소피아 수녀의 입술은 타들어갔다.

‘상쪼가리로 전화하지 마세요.’

“수녀님, 대한적십자사의 봉사상에 수녀님을 추천을 하고 싶습니다.”

“스님은 여전히 상 쪼가리에 매달고 사는군요. 그런 전화라면 앞으론 하지 말아요!”

“그러지 말고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세요. 상을 받아야만 좋은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요. 이런 상을 받아야만 다른 복지가들이 도와줍니다. 혼자서 꿍꿍거리는데 누가 돈을 도와주겠느냐?”

소피아 수녀는 돈이라는 대목에 들어서자 뜻밖에도 삼중스님에게 통사정을 했다.

“스님! 돈 같으면 도와주세요. 저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지금 얼어서 죽게 생겼어요. 추위는 닥쳐오는데 천막 안에서 모두들 추위로 사시나무 털 듯 지내고 있어요. 상은 두 번째치고라도 돈이라면 제발 힘 좀 써 주세요.”

“아! 그러시다면 돕겠습니다. 돈은 얼마나 필요하는데요?”

“스님은 유명하잖아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제야 소피아 수녀는 삼중스님의 전화를 제대로 받았다. 그리고 매달렸다. 삼중스님은 대한적십자사의 국장에게 소피아 수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전달했다. 봉사상은 외면하면서 돈만을 요구하는 수녀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갔다. 5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이 넘겨졌다. 그래서 그해 소피아 수녀는 따뜻한 겨울을 맞을 수가 있었다.

수녀님 mbc 봉사상 수상

“소피아 수녀님이 타락했어요.(웃음) 이런 일을 계기로 수녀님과는 정말 친형제처럼 친해졌어요. 아주 저한테 잘해 주었어요. 제 당뇨에 좋다는 약을 챙겨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돈 5천만 원을 내가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참 잘 대해 주었습니다. 참 ‘돈이란 놈이 좋긴 좋구나!’를 새삼 실감했죠.(웃음) 수녀님이 mbc에서 주는 봉사상을 받는 장면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었어요. 정말로 타락한 것입니다.(웃음) 이런 일이 진행되다보니 성주골짜기에는 웅장한 성당이 건축되었습니다. 전통과 현대식이 잘 조화를 이룬 성당은 김수환 추기경님도 머물고 간 곳입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기적을 만들어 놓은 게 바로 소피아 수녀님이었습니다.”

삼중스님의 도움이 단초가 되었다. 그런 도움의 손길이 기적을 일구었다. 소피아 수녀의 헌신으로 산골짜기에는 훌륭한 성당이 지어졌다. 그런데 소피아 수녀는 그 성당을 홀연히 떠났다. 그 근처 다른 산골짜기에 있는 새로운 봉사처를 따라 간 것이다. 그 곳에서 고생한다는 소식을 삼중스님은 들었다.

“과연 훌륭한 수녀님이었습니다. 굳이 내 첫사랑이라고 한 이유를 아시겠죠. 자신의 집념으로 웅장한 성전을 건축해 놓고는 빈손으로 떠났습니다. 만약 수녀님이 아직도 그 성전에 머물고 있다면 수녀님은 아마도 정신적으로 타락했을 게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훌륭히 일궈놓고 떠날 수 있는 수녀님의 자유로움을 존경합니다. 수녀님이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비치기에 내가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지가 더 앞서가네! 해보니 맛이 좋지?’라고. 첫사랑으로 만날 수 있었던 수녀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수녀님의 맑은 영혼을 닮지 못한 내 자신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 영혼에 동참해서 같이 나아가야 하는데,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는 내 모습에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기적을 일군 수녀는 떠났다

소피아 수녀는 아름다운 기적을 일궜다. 오늘도 다른 산골짜기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 기적을 다시 일구고 있다. 70살이 넘은 소피아 수녀는 반드시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룰 것이다. 버림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소피아 수녀는 아름답다. 떠남의 자유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 소피아 수녀는 성녀였다. 세상 사람을 모두 언젠가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가야만 한다.

“저는 성당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많습니다. 둔촌성당에서는 수천 명 앞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 신부님은 제가 최재만 사형수의 서명운동을 할 때 진정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 시절은 전두환 군부시절이었어요. 제가 말했어요. ‘신부님! 잘못 찍으면 불려들어 갈 텐데’는 우려의 말을 꺼내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들어가도 좋다. 학생들이 성당에 뛰어 들어오면 숨겨주고 밥해 먹였다. 한 번은 중앙정보부의 지부장이 경찰국장과 점심을 하자고 제안했다. 만나니 내가 숨겨주었던 학생들이 잡혀 있었다. 범인 은닉죄명으로 감옥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여비도 줬다면서 거들었다. 그랬더니 지부장은 ’제발 신부님이 애들을 숨겨주었다고만 안하면 됩니다. 절대 어디 가서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는 당부를 했다.’ 나는 조직 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신부님들이 부럽습니다. 다음 생에는 신부님이 꼭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마음껏 봉사생활을 신명나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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