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타이틀1

슬라이드 타이틀2

슬라이드 타이틀3

||0||050. 이일언 욥 (1767~1839년)

  충청도 홍주의 대벌 마을에서 태어난 이태문(李太文) 욥은 1801년 이전에 아버지 점손(占孫)에게서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의 관명은 태문(太文)이었다.1)

  욥은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경상도 안의로 유배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관장의 눈밖에 나서 다시 옥에 갇혔고, 물도 얻어먹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이후 10년을 갇혀 있는 동안 그는 갖은 모욕과 학대를 받았으나, 인종으로 이를 참아내면서 참다운 신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관장의 허락 아래 개인 집에서 연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1815년부터 욥은 안의로 찾아온 아내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1826년 5월에는 연금에서 풀려나 전라도 임실의 대판이라는 곳으로 이주하였으며, 이후 교리를 실천하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듬해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이일언 욥의 아내는 그에게 피신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전에 순교하지 못한 것이 분해 죽겠다. 그런데 지금은 이처럼 궁벽한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가 없으니 기막힌 일이 아니겠는가.”하고 탄식하였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을 때 전주 포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욥을 체포하였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바라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 나섰다.

  전주 관장은 이일언 욥을 처음 문초하는 과정에서 그의 전력을 알아내고는 혹독하게 매질을 시켰다. 그는 비록 키가 작고 몸집도 보잘것이 없었지만, 신앙의 인내로 형벌을 참아내 보는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곳에 있던 박해자들은 “우리가 그의 외모를 보고 잘못 판단했군. 이 사람은 정말 천주교인들의 두목이 분명하이.”라고 수군거렸다.

  문초와 형벌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지만, 욥의 신앙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 관장은 사형 선고를 내린 후 그를 옥에 가두어 두도록 하였다.

  이후 욥은 김대권(베드로) 등과 함께 12년 동안을 전주 옥에서 생활해야만 하였다. 그 동안 그는 세 번이나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 한결같이 목숨 건지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임금의 명에 의해 전주 장터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39년 5월 29일(음력 4월 17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73세였다.2)

  처형 장소로 가는 동안 욥은 자식들이 울면서 따라오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옥중에서 신음해 오다가 오늘 마침내 천국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왜들 우느냐. 오히려 나의 행운을 기뻐하라. 너희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하고, 너희들도 훌륭한 교우가 되거라.”3)
--------------------------------------------------------------------------------
1) 사학징의 권1, p. 185 ;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 281.
2) Ibid., p. 282 ;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정리), M.E.P. 소장, p. 85 ; 승정원일기, 헌종 기해년 (1839년) 4월 12일.
3)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 pp. 84-8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3 <font size=3>12. 김사건 안드레아 (1794~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5.01 1134
252 <font size=3>15. 김시우 알렉시오 (1782~1815년) [1] 기도방지기 2011.05.01 1133
251 <font size=3>87. 이봉금 아나스타시아 ( ?~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8.13 1131
250 <font size=3>60.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1760~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02 1131
249 <font size=3>정순매 바르바라 [1] 기도방지기 2011.07.02 1131
248 <font size=3>108. 박 프란치스코 (1835~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129
247 <font size=3>33. 서석봉 안드레아 [1] 기도방지기 2011.05.29 1128
246 <font size=3>두 번째 편지 기도방지기 2011.10.22 1126
245 <font size=3>47. 이도기 바오로 (1743~1798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26
244 <font size=3>93. 장 토마스 (1815~1866년) [1] 기도방지기 2011.08.20 1125
243 <font size=3>88. 홍재영 프로타시오 (1780~1840년) [1] 기도방지기 2011.08.13 1123
242 <font size=3>44. 이경도 가롤로 (1780~1802년) [1] 기도방지기 2011.06.12 1123
241 <font size=3>32. 배관겸 프란치스코 ( ?~1800년) [1] 기도방지기 2011.05.29 1123
240 <font size=3>86. 심조이 바르바라 (1813~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8.13 1122
239 <font size=3>48. 이보현 프란치스코 (1773~1800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21
» <font size=3>50. 이일언 욥 (1767~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18
237 <font size=3>72. 최필제 베드로 (1770~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24 1117
236 <font size=3>29. 박사의 안드레아 (1792~1839년) [1] 기도방지기 2011.05.22 1117
235 <font size=3>107. 양재현 마르티노 (1827~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115
234 <font size=3>97. 박상근 마티아 (1837~1867년) [1] 기도방지기 2011.08.27 111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