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타이틀1

슬라이드 타이틀2

슬라이드 타이틀3

||0||037. 안군심 리카르도 (1774~1835년)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난 안군심 리카르도는 청년 시절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경상도로 이주하였으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교회 서적을 베끼는 일에 몰두하면서 살았다.

  본래 명랑한 데다가 겸손하고 친절하였던 리카르도는 누구나 애덕으로 대하였고, 그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을 낙으로 알고 생활하였다. 또 그는 자식들의 교육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와 묵상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으며, 보통 1주일에 세 번씩은 대재를 지켰다.

  언젠가 리카르도는 포졸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관장 앞으로 끌려나가 모호한 말로 대답하여 석방되었고, 이후로는 언제나 그때 분명하게 신앙을 증거하지 못한 것과 용기가 부족하였던 것을 후회하였다.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리카르도는, 언젠가 자신도 체포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 동안 교우들에게 나누어준 서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얼마 동안 숨어 지내면서 순교할 준비를 하였는데, 상주 포졸들이 마침내 그곳을 찾아내서 그를 체포하였다.

  상주 관장은 안군심 리카르도를 보자마자 천주교 신자인지를 확인하였다. 그런 다음 교리를 외워 보라고 하자, 그는 몇 가지 중요한 교리를 외우고서는 간단하면서도 명백하고 천주교 교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 관장이 “국법을 어기는 것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하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주는 우주의 큰 임금이고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므로, 우리는 그분을 만물 위에 공경해야 합니다. 임금과 관장과 부모님은 천주 다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1)

  이어 관장은 천주를 배반하고 동료들을 밀고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리카르도는 이를 거절하고 형벌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자주 옥에서 끌려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언제나 끈기 있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관장은 그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대구로 이송토록 하였다.

  대구 감영에 도착한 뒤에도 리카르도는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의 몸은 이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천주께 대한 그의 사랑은 더욱 열렬해지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고는 다시 옥으로 끌려가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8년 동안 옥에서 고통을 받다가 1835년 이질에 걸려 사망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62세였다.2)

--------------------------------------------------------------------------------
1)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 71.
2)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 pp. 70-71 ;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p. 328-329, p. 357.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3 <font size=3>70. 최창현 요한 (1759~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16 1115
232 <font size=3>96. 정찬문 안토니오 (1822~1867년) [1] 기도방지기 2011.08.27 1113
231 <font size=3>66. 최봉한 프란치스코 ( ?~1815년) [1] 기도방지기 2011.07.16 1112
230 <font size=3>28. 박경화 바오로 (1757~1827년) [1] 기도방지기 2011.05.22 1112
229 <font size=3>26. 김희성 프란치스코 (1765~1816년) [1] 기도방지기 2011.05.22 1112
228 <font size=3>109. 오 마르가리타 ( ? ~1868년) [1] 기도방지기 2011.09.10 1109
227 <font size=3>원경도 요한 .... [1] 기도방지기 2011.06.05 1109
226 <font size=3>세 번째 편지 기도방지기 2011.10.23 1108
225 <font size=3>네 번째 편지 기도방지기 2011.10.29 1107
224 <font size=3>46. 이국승 바오로 (1722~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6.19 1107
223 <font size=3>59. 정순매 바르바라 (1777~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02 1106
222 <font size=3>53. 이중배 마르티노 ( ?~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6.26 1106
221 <font size=3>69. 최창주 마르첼리노(1749~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16 1105
220 <font size=3>82. 홍인 레오 (1758~1802년) [1] 기도방지기 2011.08.06 1104
219 <font size=3>78. 현계흠 바오로 (1763~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30 1103
218 <font size=3>68. 최인철 이냐시오 ( ?~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7.16 1092
217 <font size=3>113. 주문모 야고보 신부 (1752~1801년) [1] 기도방지기 2011.09.11 1088
» <font size=3>37. 안군심 리카르도 (1774~1835년) [1] 기도방지기 2011.06.05 1088
215 <font size=3>34. 손경윤 제르바시오 (1760~1802년) [1] 기도방지기 2011.05.29 1088
214 <font size=3>116. 최인길 마티아 (1765~1795) [1] 기도방지기 2011.09.12 1086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