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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3. 김천애 안드레아 (1760~1801년)

고향을 알 수 없는 김천애(金千愛) 안드레아는 ‘전라도의 사도’로 유명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당시 유항검의 집은 전주의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었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안드레아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는 고결한
마음으로 신자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그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으며,
교리의 가르침을 굳게 지킬 줄도 알았다.1)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전라도에서는 아우구스티노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그 뒤를 이어 김천애 안드레아도 그의 맏아들인 유중철(요한)
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내 감영에서는 안드레아에게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였지만,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그
리고 그 해 7월경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안드레아의 신앙은 형조에서도 한결같았다. 그는 어떠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십계명을 버릴 수는 없으며, 한 번 죽는 것인 만큼 죽음을 달게
받겠다.”2)고 진술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전주로 압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 혹은 28일로,
그의 나이는 42세였다.3) 그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천주교는 큰 도리요 지극히 훌륭한 행위로,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어 이미
뼛속까지 사무쳐 있습니다. (저에게) 형벌과 죽음은 영예로운 일이니,
어찌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범한 죄를 돌이켜보건대,
빨리 죽기만을 원할 따름입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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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p. 157-158.

2) 순조실록 권3, 순조 원년 7월 13일.

3)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p. 120-121 ;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 p. 162.

4) 사학징의 권1, p. 170, 김천애 ; 이기경 편, 벽위편 권3, p.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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