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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7.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 ?~1815년)

경상도 상주의 은재(현 경북 상주군 이안면 저음리)에서 태어난 김윤덕(金允德)
아가타 막달레나1)는, 장성한 뒤 고향 인근에 전파된 복음을 전해듣고 입교하였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노래산 교우촌(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으로
이주하여 그곳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아가타 막달레나는 1815년 2월 22일경, 교우들과 함께 부활 대축일을 지내던 중에
체포되어 경주로 압송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문초하던 관헌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무리 비천하고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조물주이신 천주의 은혜를 몰라보고
그분을 배반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2)

이렇게 신앙을 증거한 김윤덕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대구로 이송되었다.3)

그러나 이곳에서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던 중에 마음이 약해져 신앙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이내 감사는 그녀를 석방해 주도록 하였고, 그녀는 막 감영의 문을
나가려던 차에 안동에서 이송되어 온 김종한(안드레아)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안드레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힘써 권면하였다.

안드레아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가타 막달레나의 신앙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다시 감영으로 들어간 그녀는 포졸들을 밀치고는 서슴없이 관장
앞으로 나아갔다. 놀란 관장이 ‘방금 나갔는데, 왜 다시 들어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까는 혹형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천주를 배반하였지만, 이것은 크나큰
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뉘우치고 다시 관장님 앞으로 온 것입니다.
원하시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실한 신자입니다.”4)

관장은 화가 나서 미친년으로 몰아 내쫓게 하였다. 그러나 아가타 막달레나는
다시 들어와 이전의 배교를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취소하였고, 관장은 화가 나서
심하게 매질을 하도록 하였다. 그녀의 살점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으며, 얼마
되지 않아 뼈가 허옇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내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옥으로
끌려갔는데, 옥에 들어가자마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때가 1815년 4월 말 혹은
5월 초로, 당시 그녀의 나이는 50세 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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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다블뤼 주교는 처음에 김윤덕의 세례명을 “막달레나”로 기록하였다 :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 55. 그러나 순교자 명단을 정리하면서는 “영세 받았을 때의 세례
  명이 ‘아가타’와 ‘막달레나’ 중 어느 것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다“고 기록하였다
  (Ibid., p. 283). 그러다가 후에는 세례명을 “아가타 막달레나”로 기록하였다 :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p. 235.

2)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 p. 55 ;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 p. 235.

3) 일성록, 순조 을해년(1815년) 6월 19일.

4)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 p. 56 ;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l'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 p.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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