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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데레사

2018.06.17 14:21

기도방지기 조회 수:187

형리들은 그녀의 목에 끈을 감고 양쪽에서 오랫동안 잡아 당겨

끈의 양쪽 끝을 말뚝에 단단히 감아놓았다.

 

 

성령님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에서 내려오시어

당산종의 마음안에 당신의 장막을 세우소서 !

주님 찬미 받으소서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님 저희가  성녀 김데레사를 본받게 하소서 !

성녀  김데레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소 !

9.57.jpg

 

김 데레사는 김대건 신부의 당고모다.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 순교하였다. 아버지는 순조 15년 을해박해(1815)시 안동에서 잡혀 이듬해 대구에서 참수치명한 김종한(안드레아)이다. 그의 고향은 바로 김대건 신부의 고향이기도 한 면천의 솔뫼였다. 본시 부모가 열심한 교우였으므로 김 데레사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교육을 잘 듣고 자신도 열심히 봉교하였다. 어머니를 여의게 되자 집안이 가난해서 이때 외가에 붙어 자랐다.

 

원래 수절할 뜻은 있었으나, 아버지가 결혼하기를 명하므로 단안하고 본성이 착실하며 자선심이 많은 처녀로 열일곱 살 때에 해미 감옥에서 신앙을 위하여 죽은 손연옥(요셉)에게 출가하여 여러 자녀를 낳아 모두 천주님을 경외하도록 교육하였으며 서른두 살 때에 미망인이 되어 그때부터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대제를 지키기까지 고행에 전심하였으니 김 데레사야 말로 어진 아내와 교우다운 미망인의 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살림살이가 비천하고 가난하였지만, 수절하며 정결한 덕행으로 모든 교우의 모범이 되고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 매일 같이 겪어야 했던 궁핍 생활에 불평하지 않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며 자신의 허물을 간절히 뉘우쳤다.

 

남편이 죽은 뒤에 얼마동안 서울 친척집에 와 있다가 다시 시골 계모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때마침 중국에서 유 신부가 입국하게 되자 신부댁에서 시중들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교우들이 김 데레사를 적임자로 추천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로 불려와 정 엘리사벳과 같이 신부댁 살림을 돌보게 되었다. 김 데레사는 이 비천한 종살이가 자기 신분에 저촉됨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을 뿐더러 겸손하게 또 즐거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니 모두가 그의 겸손에 탄복해 마지않았고 유 신부 자신도 김 데레사를 칭찬하였다. 유 신부가 떠난 뒤에도 김 데레사는 정 엘리사벳을 따라 주교댁에 와서 시중들고 있었다.

 

김 데레사는 본디 치명할 원의가 간절했다. 그래서 박해가 일어나자 시골로 쉽게 피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 엘리사벳과 같이 치명하고자 피신하기를 거절하고 체포를 기다렸다. 소원대로 1839년 7월 9일 정하상 일가와 함께 붙잡혔다. 문초 때마다 대장 50대씩 치며 “배교하라, 일당을 대라, 신부에 관한 사정을 말해라.” 하며 엄명했다. 이렇듯 여섯 번 문초에서 총 280도의 대장을 맞았다. 그러나 김 데레사는 인내와 용기로 이 모든 혹형을 극복하고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재옥 일곱 달 후 마침내 교수형을 선교 받았다. 형리들이 옥안으로 들어 와 김 데레사를 끌어내어 특별한 옥으로 데려가서 그의 목에 끈을 감고 양쪽으로 오랫동안 잡아당기었다. 그리고 끈 양쪽 끝을 말뚝에 단단히 감아 놓았다. 자신의 순교를 완성하니, 때는 1840년 1월 9일이며 그의 나이 44세였다.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작은공동체,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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