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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장금 안나

2017.04.24 17:58

기도방지기 조회 수:244

 

배교한다는 한 마디만 한다면 금방 풀어주겠다

 

고 달래 보았으나 허사였다.

여러 차례 주리와 곤장으로 위협했으나 조금도 굴복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끝까지 믿음을 버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성령님 !  감미로우신 스승이여 !

저희를  가르치시어 사람들과 올바로 사귀게  하소서 !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믿음 약한 저희가  성녀 김장금 안나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

 

배교한다는 한마디를 하지 않았던 성녀 김장금 안나시여 !

믿음 약한 저희를 위하여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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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서] 성녀 김장금(金長金) 안나(1789-1839)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 성녀 김장금 안나의 생애에 관해서는 오직 <기해일기>가 전하는 것 뿐이고 그나마도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 기해일기>에 의하면 김장금은 서울 출신이고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중년에 이르러 과부가 된 후로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어머니에게 극진히 효도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사제가 입국하는 날까지 살아서 성사를 타당히 받고 선종하였다.

원대의 어머니라고 불리며, 과부인 김장금은 같은 날 한 가지로 순교한 이광렬 요한과 같이 조그마한 분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일생 동안 자기 처지에 맞게 알맞은 덕을 닦았고 가난의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뎌나갔다. 김장금 안나는 이광렬 요한의 집 곁에 살았는데 두 집안이 화목하기로 한 집안이나 다름 없었다.

1839년 4월 7일 포졸들이 한 밤중에 쳐들어와 이광헌, 권희, 이 아가타, 이광렬 4위 성인과 함께 체포되었다. 항상 순교할 원의를 품고 있던 그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포장은 먼저 배교할 것을 말했다.

“배교한다는 한 마디만 한다면 금방 풀어주겠다”고 달래 보았으나 허사였다. 여러 차례 주리와 곤장으로 위협했으나 조금도 굴복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끝까지 믿음을 버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렇게 끝까지 배교하지 않으므로 형조로 옮겨져 사형이 확정되었다. 감옥에 있은 지 5개월만인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치명하니 성녀의 나이는 51세였다.

묵상 : 순교(殉敎)는 신앙 증거를 위해 죽는 것을 뜻한다. 교우들은 순교를 치명(致命)이라고 했다. 치명이란 글자 그대로 목숨을 버린다는 의미였지만, 종교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천주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순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① 실제 죽음을 당해야 하니, 목숨이 끊어져 신체적으로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② 죽음의 원인이 신앙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사람에 의해 죽음이 이루어져야 한다.
③ 순교하는 사람이 그 죽음을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순교는 박해를 계기로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교회역사상 수많은 박해가 있었으며, 그 많은 박해 중 무수한 순교자들이 탄생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순교를 성스럽게 그리고 아주 높이 평가하는 2가지로 본다.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다음은 순교자가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천주성부께 봉헌한다는 지향과 확신을 갖고 죽음에 임하기 때문이다.

[소공동체 모임 길잡이 작은공동체, 2007년 4월호]
 
 
67번성가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그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노래하리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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